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한국국학진흥원

전체

가례보의(家禮補疑)
위로 이동 | 다음 페이지로 이동
이전 이미지로 다음 이미지로
1/1 슬라이드쇼
유물정보 테이블
유물명 가례보의(家禮補疑) 유물형태 책판
기탁자 크기

이『가례보의(家禮補疑)』는 사미헌(四未軒) 장복추(張福樞 ; 1815∼1900)가 지은 의례서이다. 이는 상례(喪禮) 중심의 《가례(家禮)》를 검토하고, 의례의 실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변례(變禮)의 문제를 고증하여 보완함으로써 예학상의 중요한 문헌의 하나이다.
장복추의 본관은 인동(仁同)이며, 자는 경하(景遐), 호는 사미헌(四未軒)으로, 장현광의 9대손이다. 그는 조부에게 수학하여 가학(家學)을 계승하였고, 주자·이황·이상정(李象靖)을 사숙(私淑)하였으며, 이진상(李震相)·이정상(李鼎相)·정삼석(鄭三錫) 등과 교유하였다. 그는 호락논쟁(湖洛論爭)에 대해서, 호론은 본연(本然)을 이심(二心)·이성(二性)으로 만들었고, 낙론은 이체(異體)의 기질(氣質) 속에 본연의 체가 내재한 줄 모르는 병폐가 있다고 지적하여 양론을 모두 거부하였다.
은일(隱逸)로 선공감역(繕工監役), 장원서(掌苑署) 별제(別提), 경상도도사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불사(不仕)하고 오직 학문과 후진교육에 전념하였으며다. 1890년(고종 27)에 칠곡군 기산면 각산리에 서당(書堂)을 세워 많은 후진을 교육하여 문인(門人) 오백여 명을 배출하였다. 1894년(고종 31)에 부호군과 가선대부에 승서(陞敍)되었으나 모두 사절하였다. 효행이 지극하였으며, 당대 영남의 유종(儒宗)으로 추존되었다. 저서로는 이외에도 역학계몽(易學啓蒙),숙흥야매잠집설(夙興夜寐箴集說), 동몽훈(童蒙訓)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