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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정보 테이블
유물명 제산종택 완의(完議) 유물형태 고문서
기탁자 크기 25.5×23.0㎝

이「완의(完議)」는 제산(霽山) 김성탁(金聖鐸 ; 1684∼1747)의 문집을 간행하기 위하여 문중과 향중의 사람들이 뜻을 모아 합의한 것을 기록한 문서이다.
여기에는 총 22명이 참여하였는데, 제산선생문집을 간행하기 위하여 문중의 간역소(刊役所)와 본소(本所) 별고(別庫)의 물력(物力)을 모으기로 한 것으로, 일의 총책임자인 도유사(都有司)는 류규가 맡았으며, 7개조의 절목(節目)으로 구성되어 있다.
김성탁은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로, 본관은 의성(義城)이며, 자는 진백(振伯), 호는 제산(霽山)이다. 할아버지는 생원 방렬(邦烈)이고, 아버지는 태중(泰重)이며, 어머니는 순천김씨로 호군 여만(如萬)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문장에 통달하여 인근의 각광을 받았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 때에는 의병을 일으키고, 창의소(倡義所)에서 토역문(討逆文)을 각 지방의 유문(儒門)에 보내어 의병에 가담할 것을 적극 권하였다. 그후 1737년 이현일(李玄逸)의 신원소(伸寃疏)를 올렸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서 정의(旌義)에 유배되었다가, 그 뒤 광양으로 이배되어 배소에서 죽었다. 문장가로 조정의 총애를 받았으며,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는데 이황(李滉)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지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