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 12년(1481) 권주(權柱)가 성균관의 동학 이창수(李昌壽) 등 13명과 함께 우의를 다지기 위해 시를 쓰고 성명·본관·거주지를 적은 서첩이다. 당시 이 서책은 장안의 화제가 되어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베껴가는 바람에 한양의 종이 값이 올라갔다는 일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