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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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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초계수친첩(甘草溪壽親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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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정보 테이블
유물명 감초계수친첩(甘草溪壽親帖) 유물형태 고도서
기탁자 크기 30.5×20.0

이「감초계수친첩(甘草溪壽親帖)」은 본관이 회산(檜山 : 창원의 옛 지명)인 감기현(甘麒鉉)이 진주목사로 있을 때, 부친의 환갑(還甲) 수연(壽宴)을 개최하였을 때에 성중의 사대부들과 자제가 모여 시(詩)를 지은 것을 모아 첩으로 편찬한 것으로, 서문은 장석영(張錫英) 등이 썼다.
회당(晦堂) 장석영은 이진상(李震相)의 문인으로서 한말의 독립운동가이자, 학자이다. 1905년 을사조약의 체결소식을 듣고, 이승희(李承熙), 곽종석(郭鍾錫)등과 영남유생 삼백여 명을 규합하여 조약 파기와 을사오적(乙巳五賊)의 처단을 요구하는 ‘청참오적소(請斬五賊疏)’를 올리고 항일운동을 시작하였다.
그후 1912년 만주로 망명하였으며,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직후 파리강화회의에 보내는 독립청원서를 직접 작성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파리장서사건이다. 이것이 일제관헌에 발각되어 2년형의 언도를 받고 옥고를 치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