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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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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암선생문집(謙菴先生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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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정보 테이블
유물명 겸암선생문집(謙菴先生文集) 유물형태 고도서
기탁자 크기 31.5×21.0

『겸암선생문집(謙菴先生文集)』은 원래 만력 연간(1573~1619)에 류성룡이 간행하였으나, 을사년 홍수로 유실되어 그 부분과 연보를 더하여 임술년에 다시 중간한 것이다.
겸암은 류운룡(柳雲龍, 1539~1601)의 호로,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응현(應見)이다. 아버지는 중영(仲班)이며, 어머니는 안동김씨(安東金氏)로 진사 광수(光粹)의 딸이다. 성룡(成龍)의 형으로,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72년(선조 5) 음사(蔭仕)를 받아 전함사별좌(典艦司別坐)가 된 뒤, 사포서별제가, 풍저창직장(豊儲倉直長), 내자시주부 등을 거쳐 광흥창주부한성부판, 관평시서령사복시첨정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1592년 가을에 풍기가군수(豊基假郡守)가 되었으며, 전란의 어려움에도 조공을 평시와 같이 함으로써 얼마 뒤 다시 정군수(正郡守)가 되었다.
그 뒤 원주목사로 승진되었으나 어버이의 노쇠함을 핑계하여 사퇴하였다. 학문에서는 이기설이나 사칠논변(四七論辨)을 이황의 이기이원론에 근거를 두고 변증을 시도하려 하였다. 안동의 화천서원(花川書院)에 제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