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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고문서

간찰42(簡札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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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정보 테이블
유물명 간찰42(簡札42) 유물형태 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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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봉화금씨 자산후손가에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 1527~1572)이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에게 1561년(명종 16) 정월 16일에 보낸 간찰이다. 이 편지는 사단칠정(四端七情) 논변으로 유명한 편지 교환 중 하나이다.

이황의 『퇴계선생문집(退溪先生文集)』 권16에 실려 있는 「답기명언(答奇明彦)-논사단칠정제이서(論四端七情第二書)」에 대한 기대승의 답장이다. 그러나 현재 이 편지는 기대승의 문집에는 편지의 형태로 실려 있지 않고, 기대승의 문집인 『고봉선생별집부록(高峯先生別集附錄)』 권2의 「청향소(請享疏)」에 그 내용이 실려 있다.

기대승은 본관이 행주, 자는 명언(明彦), 호는 고봉(高峯) 또는 존재(存齋)이다. 문과에 응시하기 위하여 서울로 가던 중 김인후(金麟厚)·이항(李恒) 등과 만나 태극설(太極說)을 논한 바 있고, 정지운(鄭之雲)의 천명도설(天命圖說)을 얻어 보게 되자 이황을 찾아가 의견을 나눌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그 뒤 이황과 12년에 걸쳐 서한을 교환하였는데, 그 가운데 1559년에서 1566년까지 8년 동안에 이루어진, 이른바 사칠논변(四七論辨)은 유학사상 지대한 영향을 끼친 논쟁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이황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에 반대하고 “사단칠정이 모두 다 정(情)이다.”라고 하여 주정설(主情說)을 주장하였으며, 이황의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수정하여 정발이동기감설(情發理動氣感說)을 강조하였다. 또 이약기강설(理弱氣强說)을 주장, 주기설(主氣說)을 제창함으로써 이황의 주리설(主理說)과 맞섰다. 시호는 문헌(文憲)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