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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고도서

간재사고(艮齋私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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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정보 테이블
유물명 간재사고(艮齋私稿) 유물형태 고도서
기탁자 영양남씨 중랑장문중 크기 27.6×18.7

전우(田愚, 1841~1922)의 문집 중 일부를 편찬한 것이다. 전우는 본관이 담양(潭陽)이고 자가 자명(子明)이며 호가 간재(艮齋)이다. 임헌회(任憲晦) 문하에서 20년간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였고, 윤치중(尹致中)·서정순(徐廷淳) 등과 함께 노론(老論)의 학맥을 잇는 마지막 학자가 되었다. 특히 그는 율곡(栗谷) 이이(李珥)와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사상을 신봉하고 주리(主理)와 주기(主氣)의 학설을 모두 배척하고 절충적 이론을 제시하였다. 1882년(고종 19)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선공감감역이 되고 그 후 여러 관직에 추천되었으나 모두 사양하였고, 만년에는 전라도의 계화도(界火島)에서 후학을 가르쳤다. 이 책은 지인들과 학문을 토론한 편지글을 따로 모아 편집한 것으로, 간재 사상의 장단점을 파악하기에 좋은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