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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명 징비록(懲毖錄) 유물형태 책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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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애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이 임진·정유왜란을 겪으면서 몸소 체험한  사실들을 기록한 책으로, 교훈적인 내용을 많이 담고 있다. 저자의 서문이 권수에 있다. 류성룡의  자는 이견(而見), 호는 서애이며 본관은 풍산(豊山)이다. 퇴계 이황의 문인으로 1567년(명종  22) 문과에 급제한 이후 각조를 편력하면서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선조 25)에는 영의정에 이르렀다. 그는 이때 경기·황해·평안·함경의 4도 도체찰(都體察)을 겸임하면서 난중의 국가 중요정책들을 시행하였다. 그러나 선조 31년 정인홍(鄭仁弘) 등의 모함으로 관직을 삭탈당하고 하회(河回)로 낙향, 이후 관계(官界)에 다시 나가지 않고 저술에만  전념하였다. 이 『징비록(懲毖錄)』은 그의 저서 『서애집(西厓集)』·『신종록(愼終錄)』 등보다도 가장 힘써 만든 것으로, 대개 낙향 후 3, 4년 뒤 찬술이 매듭지어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 책은 제목 및 저자의 서문에도 나타나듯이 '에기징이비후환(豫其懲而毖後患)'이라는 뚜렷한 목적의식과 저자가  실제로  왜란의 전 기간 동안 국가의 중책을 맡아 몸소 견문하고 체험하면서 그 대책을 강구하는 가운데 얻어진 풍부한 사료와 지식을 기반으로 하였다는데 큰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