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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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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당선생문집(晦堂先生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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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명 회당선생문집(晦堂先生文集) 유물형태 책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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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당선생문집(晦堂先生文集)』은 근세의 학자 장석영(張錫英 ; 1851∼1926)의 시문집이다.
장석영의 본관은 인동(仁同). 일명 석교(碩敎). 호는 회당(晦堂). 경상북도 칠곡출신이다. 문집은 1932년 후손 익원(益遠)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1·2는 시 504수, 권3∼18은 서(書) 681편, 권19∼21은 잡저 8편, 권22∼30은 문(文) 1편, 변(辨) 5편, 설(說) 16편, 사(辭) 3편, 계(戒) 1편, 학규 1편, 서(序) 110편, 기(記) 132편, 발(跋) 57편, 잠(箴) 9편, 명(銘) 25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시는 기울어 가는 나라의 형세를 바로잡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불우의 한을 시 속에 담아 표현한 것이다. 이 가운데〈도한강(渡漢江)〉과 〈송경회고(松京懷古)〉5절에는 나라를 잃은 슬픔이 절실하게 묘사되어 있다.
장석영은 1905년 일제가 무력으로 위협하여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고 국권을 박탈하자 통분하여 일제침략을 규탄하고 을사조약의 파기와 을사오적의 처형을 요청하는 〈청참오적소(請斬五賊疏)〉를 이승희(李承熙)·곽종석(郭鍾錫)과 함께 올렸다. 1907년 대구에서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나 전국에 파급될 때 칠곡지방의 국채보상회 회장으로 추대되어 활동하였다. 3·1운동이 일어나자 곽종석·김창숙(金昌淑) 등과 협의하여 파리평화회의에 제출할 독립청원서 초안을 작성하였으며, 성주 장날의 독립만세운동에 적극 참가하였다가 일본경찰에 붙잡혀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1925년 제2차 유림단운동이 있을 때 영남대표로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