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한국국학진흥원

고문서

교지(이현보)(敎旨(李賢甫))
위로 이동 | 이전 페이지로 이동 | 다음 페이지로 이동
유물정보 테이블
유물명 교지(이현보)(敎旨(李賢甫)) 유물형태 고문서
기탁자 크기 49.5X79.0

1514년(중종 9) 10월 이현보(李賢甫, 1467~1555)에게 내려진 교지이다.
이현보는 본관이 영천(永川), 자는 비중(棐仲), 호는 농암(聾巖)이고, 참찬 이흠(李欽)의 아들이다. 1498년(연산군 4) 식년문과에 급제한 뒤 32세에 벼슬길에 올라 예문관검열∙춘추관기사∙예문관봉교 등을 거쳐, 병조참지∙동부승지∙부제학 등을 거쳐, 대구부윤∙경주부윤∙경상도관찰사∙형조참판∙호조참판을 지냈다. 1542년 76세 때 지중추부사에 제수되었으나 병을 핑계로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와 만년을 강호에 묻혀 시를 지으며 한거하였다. 홍귀달(洪貴達)의 문인이며, 후배인 이황(李滉)∙황준량(黃俊良) 등과 친하였다. 그는 조선시대에 자연을 노래한 대표적인 문인으로 국문학사상 강호 시조의 작가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교지는 국왕이 신하에게 관직이나 관작, 시호, 토지 등을 내려줄 때 쓰는 문서로, 관직을 내려주는 교지를 고신(告身)이라 하고, 문무과 과거합격자에게 주는 것을 홍패(紅牌), 생원시와 진사시에 주는 교지를 백패(白牌)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