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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고도서

백암집(栢巖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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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정보 테이블
유물명 백암집(栢巖集) 유물형태 고도서
기탁자 크기 30.0×18.5

『백암집(栢巖集)』은 조선 중기 문신인 김륵(金玏, 1540-1616)의 문집으로 7권4책이다. 김륵은 본관이 예안(禮安), 자는 희옥(希玉), 호는 백암(柏巖)이다. 만칭(萬秤)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증 좌승지 우(佑)이고, 아버지는 진사 사명(士明)이며, 백부인 형조원외랑 사문(士文)에게 입양되었다. 1576년(선조 9)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99년 명나라 장수를 접반하고 형조참판에서 충청도관찰사로 나갔다. 1612년 하절사(賀節使)로 명나라에 가서 명나라 군사가 조선에 남아 있는 것처럼 꾸며 일본의 재침략을 막아 달라는 청을 올렸다. 그리고 명나라로부터 일본에게 재침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칙서를 보내게 하고 돌아왔다. 곧, 대사성이 되고 안동부사로 나가 범람하는 낙동강의 재해를 막기 위해 제방을 수축해 후세에까지 칭송을 들었다. 그러나 김직재(金直哉)의 무옥(誣獄)에 연루되고 또 앞서 광해군의 생모인 공빈 김씨(恭嬪金氏) 별묘(別廟)의 의물(儀物)을 종묘 의물과 똑같게 하는 것에 반대해 강릉으로 유배가게 되었는데, 여러 대신들의 변호로 풀려났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민절(敏節)이다.
첫머리에는 李象靖의 서문이 있다. 권1·2에는 次歸去來辭와 止水賦 각 1편과 詩 247수가 실려있다. 이 가운데 東浦十六景, 秋月亭八詠, 蒼不亭八詠 등은 그가 강릉부사, 안동부사와 안집사, 동지사로서 여러 고을에서 관직생활을 하면서 그 지역의 아름다운 자연풍경을 묘사한 작시품이다. 권3에는 敎書 2편, 疏 8편, 箚 6편, 권4에는 箚 5편, 啓辭 3편, 권5에는 狀啓 10편, 呈文 8편이 실려있다. 寧越郡陳弊疏는 피폐한 영월군의 사정을 잘 기록한 글이고, 處置兩司箚는 崔永慶의 죽음을 伸寃한 내용이다. 答兵部問目은 1602년(선조 36) 그가 명나라에 가서 병부상서 蕭大亨에게 임진왜란의 시말과정과 그 대응책을 5개항으로 나누어 보고한 글이다. 권6에는 書 10편, 雜著와 序 각 1편, 箋 4편, 上樑文 2편, 祭文 11편, 그리고 補遺로 4수의 詩와 書 1편이 실려있다. 권7에는 김륵의 年譜와 부록으로 김륵에 대한 祝文, 祭文, 輓詞, 神道碑銘, 墓誌銘, 儒生疏, 贈行篇 등이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