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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서판

모명재기(慕明齋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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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정보 테이블
유물명 모명재기(慕明齋記) 유물형태 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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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수당(春睡堂)에 걸려 있는 심재(深齋) 조극섭(曺兢燮)이 지은 모명재기(慕明齋記)이다. 권주(1576~1651)가 지은 집이 당은 춘수당이고, 재는 모명재(慕明齋)이다. 모명재란 이미 망한 명나라를 사모하는 재실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권주는 병자호란 당시에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굴욕적인 항복을 한 후에 그 치욕을 감당할 길이 없어서 영주의 구성산(龜城山) 아래로 내려와 오랑캐의 청나라를 배척하고 망한 명나라를 사모함으로써 대의를 지키겠다는 의미에서 자기가 거처하는 재실을 모명재라 했다고 한다.
춘수당은 권주가 1605년에 구성산 밑에 건립하였고, 1959년에 후손들이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권주는 자가 자지(子止), 호는 춘수당(春睡堂)이다. 좌통례(左通禮) 권두문(權斗文)의 아들이다. 임진왜란 때에 평창 군수인 아버지가 포로로 잡혔으나, 처형 하루 전 비바람 치는 저녁에 권주가 슬기와 기백으로 구해 내었다. 병자호란 후에 과거를 단념하고, 구성산 아래 소당을 짓고 춘수당이라 했다. 제갈공명이 포부와 경륜을 지니고 와룡초당에서 은거하며 낮잠을 즐긴 일에 견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