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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서판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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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슬라이드쇼
유물정보 테이블
유물명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 유물형태 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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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서원 강학당에 걸려있는 현판으로 진백(陳栢)의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이 적혀 있다. 그리고 이 서원에서는 매일 아침 백록동서원규(白鹿洞書院規)·경재잠(敬齋箴)·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을 차례대로 읽는 것이 관례라고 이가순(李家淳)이 밝히고 있다.
1542년(중종 37) 풍기 군수 주세붕이 고려의 유학자 안향(安珦)의 사묘를 세우고 다음해에 학사를 옮겨 백운동서원을 설립한 것이 소수서원의 시초이다. 그 후 1544년(중종 39) 여기에 안축(安軸)과 안보(安輔)를, 1633년(인조 11)에는 주세붕의 위패를 모셔 제사지냈다. 1550년(명종 5) 이황(李滉)이 풍기 군수로 부임해 와서 조정에 상주하여 소수서원이라는 사액과 『사서오경(四書五經)』·『성리대전(性理大全)』 등의 내사(內賜)를 받게 되어 최초의 사액서원이자 공인된 사학(私學)이 되었다. 1871년(고종 8)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철폐를 면한 47서원 가운데 하나로 지금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