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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시판

동포서당(東浦書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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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정보 테이블
유물명 동포서당(東浦書堂) 유물형태 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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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정(天雲亭)에 걸려 있는 백암(栢巖) 김륵(金玏, 1540~1616)의 시 동포서당(東浦書堂)이다. 이 시는 7언율시 2수로 1612년에 지은 것인데, 나중에 중수(重修)할 때 추각(追刻)한 것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노년의 종적이 티끌세상의 길을 벗어나니, 우연히 새 주거를 점쳐 한 구역에 누웠네. 반곡에 반선하니 당나라 이원과 같고, 고산에 고절하니 송나라 임포와 같네. 한가함을 도모함에 시의 많고 적음을 묻지 않고, 민망함을 없앰에 어찌 술이 있고 없음을 논하랴? 우국하는 한 치 마음 마침내 어둡지 아니하니, 매양 종복을 불러 세금 실어 보냄 재촉하네.” “우연히 깊은 구렁 따라 그윽한 터에 집 지으니, 인간 세상 향하여 시비를 잘 말하지 아니하네. 비가 강 물결을 지나가니 고기도 또한 즐거워하고, 봄이 매화나무에서 생기니 학이 먼저 아네. 풍광이 눈에 가득하니 시 읊조림이 고질병 이루고, 세상일에 관심 가지니 꿈도 또한 슬프구나. 홀로 스스로 꿈 깨어 도리어 홀로 술 마시니, 가고 머무름 자연이 하는 대로 맡겨 두노라.”
천운정은 김륵이 건립하였는데, 2남인 도사(都事) 김지선(金止善)에게 세수(世守)케 했다. 김륵은 본관이 예안(禮安), 자는 희옥(希玉), 호는 백암(栢巖)이다. 아버지는 진사 사명(士明)인데, 백부인 형조원외랑 사문(士文)에게 입양되었다.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1576년(선조 9)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후에 영천의 구산서원(龜山書院)에 제향되었고, 이조 판서가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민절(敏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