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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책판

구례홀기(九禮笏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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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정보 테이블
유물명 구례홀기(九禮笏記) 유물형태 책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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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홀기(九禮笏記)』는 근세의 학자 장석영(張錫英 ; 1851∼1926)의 저서이다.
장석영의 본관은 인동(仁同)이며, 호는 회당(晦堂)으로 경상북도 칠곡출신이다. 장여헌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참판 장시표이다. 16세 때 부친이 북청현감으로 있을 때 책방의 임무를 맡아보았으며, 후에 초야에 여생을 보내면서 후진교육에 전념하여 많은 저서를 남겼다. 1905년 일제가 무력으로 위협하여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고 국권을 박탈하자 통분하여 일제침략을 규탄하고 을사조약의 파기와 을사오적의 처형을 요청하는 〈청참오적소(請斬五賊疏)〉를 이승희(李承熙)·곽종석(郭鍾錫)과 함께 올렸다. 칠곡지방의 국채보상회 회장으로 추대되어 활동하였고, 3·1운동이 일어나자 곽종석·김창숙(金昌淑) 등과 파리평화회의에 제출할 독립청원서 초안을 작성하였다. 독립만세운동에 적극 참가하였다가 일본경찰에 붙잡혀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저술로 《사례태기》·《의례집전》·《성리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