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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책판

번암선생문집(樊巖先生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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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명 번암선생문집(樊巖先生文集) 유물형태 책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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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선생문집(樊巖先生文集)』은 채제공(蔡濟恭 ; 1720∼1799)의 시문집으로 59권 27책의 목판본이다. 채제공의 자는 백규(伯規), 호는 번암(樊巖), 시호는 문숙(文肅)이며, 본관은 평강(平康)이다. 채제공은 지중추부사 채응일(蔡膺一)의 아들로 홍주 출생이다.
1743년 문과정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권지부정자에 임명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1748년 한림회권(翰林會圈) 때에 영조의 탕평을 표방한 특명으로 선발되어 청요직인 예문관사관직을 거쳐, 승정원 동부승지·이천도호부사·대사간을 거쳤다. 1762년 모친상으로 관직을 물러났고, 복상 후 안악군수로 재임중 부친상을 당하여 다시 관직에서 물러났다. 1788년 국왕의 친필로 우의정에 특채되었고, 이후 1790년 좌의정으로서 행정수반이 되었고, 3년간에 걸치는 독상(獨相)으로서 정사를 오로지 하기도 하였다. 1793년에 잠깐 영의정에 임명되었고,그 뒤는 주로 수원성역을 담당하다가 1798년 사직하였다. 1799년 1월 18일에 사망, 3월 26일에 사림장(士林葬)으로 장례가 거행되었고, 묘는 경기도 용인에 있다. 1801년 황사영백서사건(黃嗣永帛書事件)으로 추탈관작 되었다가 1823년 영남만인소로 관작이 회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