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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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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곡선생문집(屛谷先生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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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명 병곡선생문집(屛谷先生文集) 유물형태 책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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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곡선생문집』은 조선 후기의 학자인 권구(權榘 ; 1672∼1749)의 시문집이다.
권구의 자는 방숙(方叔), 호는 병곡(屛谷)이며, 본관은 안동이다. 아들 진(縉)과 손자 명우(明佑)가 유문을 수집·정리하여 편집하였고, 1797년(정조 21) 유림 김필형(金弼衡)등의 발의로써 간역이 시작되어 이종수(李宗洙)·류규·류규춘(柳象春)이 감교·재정하고, 류한규(柳漢奎)·김세규(金世奎) 등이 동역하여 안동 병산서원에서 완료되었다. 그는 이현일(李玄逸)의 문인으로, 일찍이 과거를 단념하고 유학의 전통을 지키면서 학문연구와 후진교육에 전념하였다.
이밖에 천문·역수(曆數)·역학(易學)·사기(史記) 등에도 매우 조예가 깊었다. 그는 자신이 거주하던 향리 안동 족적동(足積洞)에서 사창(社倉)을 열어 흉년에 빈민구제에 힘썼고, 향약을 실시하여 고을에 미풍양속을 일으켰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으로 인해 안무사(按撫使) 박사수(朴師洙)가 서울로 압송하였으나, 그의 인품에 감동을 받은 영조의 특지(特旨)로 곧 석방되었다.
그는 경학(經學)·예설(禮說)·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여, 이기설에는 이황(李滉)의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전적으로 지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