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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고도서

단계선생실기(丹溪先生實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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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정보 테이블
유물명 단계선생실기(丹溪先生實紀) 유물형태 고도서
기탁자 크기 31.6X21.4

2책 3권으로 된 『단계선생실기(丹溪先生實紀)』는 1768년에 간행된 『단계유고(丹溪遺稿)』 이후에 순종 때에 다시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단계(丹溪)는 사육신의 한 사람인 하위지(河緯地)의 호이다. 그의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천장(天章)·중장(仲章), 군수 하담(河澹)의 아들이다. 1435년(세종 17) 생원이 되었고, 1438년 식년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한 뒤 집현전부수찬에 임명되었다. 이듬해 병으로 사직하자 세종이 약을 내려 고향에 가서 치료하게 하고 또 경상감사에게도 전지(傳旨)하여 그를 구료하게 하였다. 1444년 집현전부교리가 되어 『오례의주(五禮儀註)』의 상정(詳定)에 참여하였다. 세조의 즉위 후 그에게 교서를 내리는 등 잇단 부름을 받아 예조참판에 임명되었으나 세조의 녹(祿)을 먹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세조가 즉위한 해부터의 봉록은 따로 한 방에 쌓아두고 먹지를 않았다 한다. 한편으로는 세조의 강권정치에 맞서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서 추국의 명을 받기도 하였다. 1456년(세조 2) 단종복위운동이 탄로나 그도 주모자의 한 사람으로 국문(鞫問)을 받게 되었다. 그는 국문과정에서 성삼문(成三問) 등이 당한 작형(灼刑:불에 달군 쇠로 죄인의 맨살에 지지는 형벌)은 당하지 않았으나, 사육신 등 여러 절신과 함께 거열형(車裂刑)을 당하였다. 그가 처형되자 선산에 있던 두 아들 하호(河琥)와 하박(河珀)도 연좌(連坐)되어 사형을 받았다. 뒤에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노량진의 민절서원(愍節書院), 영월의 창절사(彰節祠), 선산의 월암서원(月巖書院) 등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충렬(忠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