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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고문서

교지5(교첩:봉직랑행예문관검열겸춘추관기사관)(敎旨5(敎牒:奉直郞行藝文館檢閱兼春秋館記事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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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정보 테이블
유물명 교지5(교첩:봉직랑행예문관검열겸춘추관기사관)(敎旨5(敎牒:奉直郞行藝文館檢閱兼春秋館記事官)) 유물형태 고문서
기탁자 크기 48.5×75.3

이 교첩은 간재 이덕홍의 5남인 이점(李蒧)이 받은 『교첩(敎牒)』이다. 이점은 1616년(광해군 9) 10월 9일 이조(吏曹)의 명에 의해 봉훈랑행예문관검열겸춘추관기사관(奉訓郞行藝文館檢閱兼春秋館記事官)에서 봉직랑행예문관검열겸춘추관기사관(奉直郞行藝文館檢閱兼春秋館記事官)에 제수되면서 이 교지를 받았다. 이점은 아버지 이덕홍으로부터 학문을 전수받고 퇴계학의 정맥을 계승한 영남 사림의 대표적 인물이었다.
교지는 보통 국왕이 신하에게 보일 수 있는 권위의 상징으로 간주되었다. 조선 개국 초에는 왕지(王旨)라고 불렀고, 한말에는 칙명(勅命)이라고도 하였다. 이와 같이 왕의 권위가 실린 교지를 받는다는 것은 왕의 신임을 받는다는 것을 뜻하며, 그런 만큼 개인과 가문에 큰 영광이 되는 것이었다. 이 교첩은 현재 도지정 유형문화재 제381호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