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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고도서

두암집(斗庵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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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정보 테이블
유물명 두암집(斗庵集) 유물형태 고도서
기탁자 크기 30.0×19.5

『두암집(斗庵集)』은 김약련(金若鍊, 1730-1802)의 문집으로 10권5책이다. 김약련은 본관이 예안 (禮安), 자는 유성(幼城), 호는 두암(斗庵), 또는 인수(忍叟)이다. 1774년 증광별시(增廣別試)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주서가 되었다. 1776년 홍인한(洪麟漢)·정후겸(鄭厚謙)의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무함을 입어 삭녕(朔寧)으로 유배되었다가 다음해 정월에 풀려났다. 그 뒤 16년 동안 은거하면서 학문연구에 몰두하였다. 1793년(정조17) 가주서(假注書)에 임명되었고, 이어 전적·병조좌랑·좌부승지등을 역임하였다.
첫머리에는 柳致明의 서문이 있다. 권1에는 詩 55수, 輓詞 27수, 誄辭 2수, 권2에는 疏 4편, 書 6편, 권3에는 書 16편, 雜著 9편이 실려있다. 잡저 중 「箕子論」에 이어서 쓴 箕子관련 논의인 「箕子朝周辨」은 이익(李瀷)이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기자(箕子)의 출처를 밝힌 것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한 글이다. 「遊江都錄」 1757년(영조 33) 강화도를 유람하면서 쓴 것으로 고적의 위치·유래 등을 상세히 기록한 고증적인 성향이 강한 글이다. 권4에는 序 10편, 記 16편, 권5에는 跋 8편, 說 7편, 傳 6편, 권6에는 傳 3편, 上樑文 3편, 祝文 8편, 祭文 13편이 실려있다. 권7에는 行狀 13편, 권8에는 行狀 12편, 권9에는 碑碣墓誌 8편, 권10에는 墓表 7편이 실려있고, 부록으로 金若鍊에 대한 家狀, 行狀, 墓碣銘이 실려있다. 문집 끝에는 朴時源의 발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