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한국국학진흥원

농가월령가

개요
머리 노래
1月/정월령
2 월령
3 월령
4 월령
5 월령
6 월령
7 월령
8 월령
9 월령
10 월령
11 월령
12 월령
  • 농가월령가는 조선 헌종때 정학유의 작품으로 3,4조 4음보의 가사체, 월령체, 전13장으로 구성되어있다.
    농촌 생활의 1년을 각 월별로 읊은 달거리 형식의 노래인데, 각 장의 내용은 서사, 본사, 결사로 구분되며, 서사에서는 천체운행과 계절의 반복 변화를, 본사에서는 농법 · 농가행사 · 농가풍속 등을 적어 농민을 교화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결사에서는 본사의 내용대로 행해야 한다며 실천과 경계의 뜻을 적고 있다.

    <농가월령가>는 양반의 문학이면서도 농민에 대한 이해와 친근감을 나타내고, 권농(勸農)의 의도를 역설하는 데 특히 효과적인 형식을 갖추고 있으며, 농가의 행사와 범절을 통하여 당시의 풍속, 조상들의 미덕 그리고 서민 생활의 흥취를 맛볼 수 있게 하였다.

    <농가월령가>에서 자연은 노동의 현장이자 생활의 현장이다. 여기서 자연은 생산물이 만들어지는 곳이지 완상(玩賞)의 대상이 아니다. 조선전기가사를 포함해 그 이전의 사대부문학에서 보여지는 자연의 이미지가 이 작품에서는 새로운 의미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삶의 고달픔과 더불어 삶의 기쁨과 보람이 살아 숨쉬는 삶의 구체적인 현장인 것이다.
  • 하늘땅이 생겨나면서 해와 달과 별이 비쳤다네.
    해와 달은 도는데 일정한 도수가 있고,
    별은 돌아가는 일정한 길이 있어서
    일 년 삼백 예순 날에 정해진 도수가 돌아오므로,
    동지와 하지와 춘분과 추분의 절후는
    해가 돌아가 길고 짧음을 헤아려 정하고,
    상현과 하현과 보름과 그믐과 초하루는 달이 둥글게 차고,
    이지러지는 때문이다.

    땅위의 동서남북은 곳에 따라 서로 틀리므로, 북극성을 표시하여,
    멀고 가까움을 정하니, 이십사 절후를 한 해 열두 달에 가르니,
    달마다 드는 두 절후는 그 사이가 보름에 해당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네 철이 오고 가서, 저절로 한 해를 이루나니,
    요임금, 순임금과 같이 착한 임금님은 책력 만드는 법을 처음 펴서,
    때를 밝혀 백성을 맡기시니,
    하나라 오백 년 동안은 정월(인월)로 해의 머리를 삼고,
    주나라 팔백 년 동안은 십 이 월(자월)로 해의 머리를 삼기로 정하니라.

    지금 우리들이 쓰고 있는 책력은 하나라 때 것과 한가지니라.
    춥고, 덥고, 따뜻하고, 서늘한 철의 차례가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바로 맞으니, 공자의 취하심도 하나라 때의 역법을 행하려 하였도다.
  • 1월은 초봄이라 입춘, 우수의 절기로다.
    산 속 골짜기에는 얼음과 눈이 남아 있으나,
    넓은 들과 벌판에는 경치가 변하기 시작하도다.

    어와, 우리 임금님께서 백성을 사랑하고 농사를
    중히 여기시어,
    진심으로 측은히 여기시어 농사를 권장하시는 말씀을
    방방곡곡에 알리시니,
    슬프다 농부들이여, 아무리 무지하다고 한들
    네 자신의 이해 관계를 제쳐 놓고 라고 임금님의 뜻을
    어기겠느냐?
    밭과 논을 반반씩 균형 있게 힘대로 하오리라.
    일년의 풍년과 흉년을 예측하지는 못한다 해도,
    사람의 힘을 다 쏟으면 자연의 재앙을 면하나니,
    제 각각 서로 권면하여 게을리 굴지 마라.

    일년의 계획은 봄에 하는 것이니
    모든 일을 미리하라,
    만약 봄에 때를 놓치면
    해를 마칠 때까지 일이 낭패 되네.
    농지를 다스리고 농우를 잘 보살펴서,
    재거름을 재워 놓고 한편으로 실어내어,
    보리밭에 오줌 주기를
    새해가 되기 전보다 힘써 하소.
    늙으니 기운이 없어 힘든 일은 못하여도,
    낮이면 이엉을 엮고 밤이면 새끼 꼬아,
    때맞추어 지붕을 이니 큰 근심을 덜었도다.
    과일 나무 보굿을 벗겨 내고
    가지 사이에 돌 끼우기,
    정월 초하룻날 날이 밝기 전에
    시험삼아 하여 보소.
    며느리는 잊지 말고 송국주를 걸러라.
    온갖 꽃이 만발한 봄에
    화전을 안주 삼아 한번 취해 보자.

    정월 대보름날 달을 보아
    그 해의 홍수와 가뭄을 안다 하니,
    농사짓는 노인의 경험이라 대강은 짐작하네.
    정월 초하룻날 세배하는 것은
    인정이 두터운 풍속이라.
    새 옷을 떨쳐 입고 친척과
    이웃을 서로 찾아 남녀 노소에
    아이들까지 몇 사람씩
    떼를 지어 다닐 적에,
    설빔 새 옷이 와삭버석거리고
    울긋불긋하여 빛깔이 화려하다.
    남자는 연을 띄우고 여자 애들은 널을 뛰고,
    윷을 놀아 내기하기 소년들의 놀이로다.
    설날 사당에 인사를 드리니
    떡국과 술과 과일이 제물이로다.
    움파와 미나리를 무싹에다 곁들이면,
    보기에 새롭고 싱싱하니
    오신채를 부러워하겠는가?
    보름날 약밥을 지어 먹고 차례를 지내는 것은
    신라 때의 풍속이라.
    지난 해에 캐어 말린 산나물을 삶아서 무쳐 내니
    고기 맛과 바꾸겠는가?
    귀 밝으라고 마시는 약술이며,
    부스럼 삭으라고 먹는 생밤이라.
    먼저 불러서 더위 팔기와 달맞이 횃불 켜기는,
    옛날부터 전해오는 풍속이요 아이들 놀이로다.
  • 이월은 한봄이라 경칩 춘분 절기로다.
    초엿샛날 좀생이로 풍흉을 안다 하며
    스무날 날씨 보아 대강은 짐작하니 반갑다.
    봄바람이 변함 없이 문을 여니
    말랐던 풀뿌리는 힘차게 싹이 트고
    개구리 우는 곳에 논물이 흐르도다.
    맷비둘기 보리나니 버들빛 새로와라.
    보습 쟁기 차려 놓고 봄갈이 하여 보자.
    기름진 밭 가리어서 봄보리 많이 심고
    목화밭 되갈아 두고 제때를 기다리소.
    담배 모종과 잇꽃 심기 이를수록 좋으리라.
    뒷동산 나무 다듬으니 이익도 되는구나.
    첫째는 과일나무요
    둘째는 뽕나무라 뿌리를 다치지 말고
    비오는 날 심으리라.
    솔가지 찍어다가 울타리 새로 하고
    담장도 손을 보고 개천도 쳐올리소.
    안팎에 쌓인 검불 말끔히 쓸어 내어
    불 놓아 재 받으면 거름을 보태려니
    온갖 가축 못다 기르나 소 말 닭 개 기르리라.
    씨암탉 두세 마리 알 안겨 깨어 보자
    산채는 일렀으니 들나물 캐어 먹세
    고들빼기 씀바귀며 소루쟁이 물쑥이라
    달래김치 냉잇국은 입맛을 돋구나니
    본초강목 참고하여 약재를 캐오리라
    창백출 당귀 천궁 시호 방풍 산약 택사
    낱낱이 적어 놓고 때 맞추어 캐어 두소
    촌 집에 거리낌 없이 값진 약 쓰겠느냐
  • 3월은 늦봄이니 청명 곡우 절기로다.
    봄날이 따뜻해져 만물이 생동하니
    온갖 피어 나고 새소리 갖가지라.
    대청 앞 쌍제비는 옛집을 찾아오고
    꽃밭에 범나비는 분주히 날고 기니
    벌레도 때를 만나 즐거워함이 사랑홉다.
    한식날 성묘하니 백양나무 새 잎 난다.
    우로 느껴 슬퍼함을 술 과일로 펴오리라.
    농부의 힘드는 일 가래질 첫째로다.
    점심밥 잘 차려 때 맞추어 배 불리소.
    일꾼의 집안식구 따라와 같이 먹세
    농촌의 두터운 인심 곡식을 아낄소냐.
    물꼬를 깊이 치고 도랑 밟아 물을 막고
    한편에 모판하고 그 나머지 삶이 하니
    날마다 두세 번씩 부지런히 살펴보소.
    약한 싹 세워낼 때 어린아이 보호하듯
    농사 가운데 논농사를 아무렇게나 못하리라.
    개울가 밭에 기장 조요 산 밭에 콩 팥이로다.
    들깨모종 일찍 뿌리고 삼농사도 오리라.
    좋은 씨 가리어서 품종을 바꾸시오.
    보리밭 갈아 놓고 못논을 만들어 두소.
    들 농사 하는 틈에 채소 농사 아니할까
    울 밑에 호박이요 처맛가에 박 심으고
    담 근처에 동과 심어 막대 세워 올려 보세
    무 배추 아욱 상치 고추 가지 파 마늘을
    하나하나 나누어서 빈 땅 없이 심어 놓고
    갯버들 베어다가 개바자 둘러막아
    닭 개를 막아 주면 자연히 잘 자라리
    오이밭은 따로 하여 거름을 많이 하소
    시골집 여름 반찬 이밖에 또 있는가
    뽕 눈을 살펴보니 누에 날 때 되었구나
    어와 부녀들아 누에 치기에 온 힘 쏟으소
    잠실을 깨끗이 하고 모든 도구 준비하니
    다래끼 칼 도마며 채광주리 달발이라
    각별히 조심하여 내음새 없이 하소
    한식 앞뒤 삼사 일에 과일나무 접하나니
    단행 이행 울릉도며 문배 참배 능금 사과
    엇접 피접 도마접에 행차접이 잘 사느니
    청다래 정릉매는 늙은 그루터기에 접을 붙여
    농사를 마친 뒤에 분에 올려 들여놓고
    눈 바람 추운 날씨 봄빛을 홀로보니
    실용은 아니지만 고고한 취미로다
    집집이 요긴한 일 장 담그기 행사로세
    소금을 미리 받아 법대로 담그리라
    고추장 두부장도 맛맛으로 갖추 하소
    앞산에 비가 개니 살진 나물 캐오리라
    삽주 두릅 고사리며 고비 도랏 어아리를
    일부는 엮어 달고 일부는 무쳐 먹세
    떨어진 꽃잎 쓸고 앉아 병 술을 즐길 때에
    아내가 준비한 일품 안주 이것이로구나.
  • 4월이라 초여름이 되니 입하 소만의 절기로다.
    비 온 끝에 햇볕이 나니 날씨도 화창하다.
    떡갈나무 잎이 피어날 때에 뻐꾹새가 자주 울고,
    보리 이삭이 패어 나니 꾀꼬리가 노래한다.

    농사나 누에 치는 일이 이제 막 한창이다.
    남녀 노소가 농사일에 바빠서 집에 있을 틈이 없어,
    고요한 가운데 사립문이 녹음 속에 닫혀 있도다.
    목화를 많이 심소, 길쌈의 기본이 되는 것이다.
    수수나 동부, 녹두, 참깨 밭에 간작을 적게 하소.
    떡갈나무를 꺾어 거름을 만들 때
    풀을 베어 섞어 하소,
    무논을 써래질하여 이른 모를 심어 보세.
    추수 때까지 먹을 양식이 부족하니
    환자를 얻어 보태리라.
    한 잠 자고 일어난 누에에게 하루에도
    열두 차례의 밥을 밤낮을 가지리 않고
    부지런히 먹이리라.
    뽕잎 따는 아이들아, 훗그루를 잘 보살펴서,
    오래 묵은 나무는 가지를 찍어 버리고
    햇잎은 잘 제쳐서 따소.
    찔레꽃이 만발하는 계절이 되었으니
    적은 가뭄이 없겠는가.
    이 때를 당해서 내가 할 일을 생각하소.
    도랑을 만들어 물길을 내고
    비가 새는 곳은 지붕을 고쳐서,
    비 오는 것에 대비하면 뒷근심이 더 없다네.

    봄에 짠 무명을 이 때에 표백하고,
    삼베와 모시로 형편에 따라 여름 옷을 지어 두소.
    벌통에 새끼를 치니 새 통에 분가를 시키리라.
    천만 마리의 벌이 한 마음으로 왕벌을 옹위하니,
    꿀을 먹기도 하겠지만
    임금과 신하의 도리를 깨닫게 되도다.
    사월 초파일에 등불을 켜 놓는 일이
    산골 마을에서 긴요한 것은 아니나,
    느티떡과 콩찌니는 계절에 맞는 별미로다.

    앞 시내에 물이 줄었으니 물고기를 잡아 보세,
    낮이 길고 바람이 잔잔하니 오늘 놀이 잘 되겠다.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백사장을 굽이굽이 찾아가니,
    늦게 핀 연꽃에는 봄빛이 아직도 남아 있구나.
    그물을 둘러치고 싱싱한 물고기를 잡아 내어,
    편평한 바위에 솥을 걸고 솟구쳐 끓여 내니,
    팔진미나 오후청이라도 이 맛에 비길 수가 있겠느냐.
  • 오월이라 한여름되니 망종 하지 절기로다.
    남쪽 바람 때 맞추어 보리 추수 재촉하니
    보리밭 터를 닦고 보리 타작 하오리라.
    드는 낫 베어다가 한 단 두 단 헤쳐 놓고
    도리깨 마주 서서 흥을 내어 두드리니
    불고 쓴 듯하던 집안 갑자기 벅적인다.
    가마니에 남는 곡식 이제 곧 바닥이더니
    중간에 이 곡식으로 입에 풀칠 하겠구나.
    이 곡식 아니라면 여름 농사 어찌할까.
    천심을 생각하니 은혜도 끝이 없다.
    목동은 놀지 말고 농우를 보살펴라.
    그루갈이 모 심기 제 힘을 빌리리라.
    보릿짚 말리우고 솔가지 많이 쌓아
    땔나무 준비하여 장마 걱정 없이 하소.
    누에 치기 마칠때에 사나이 힘을 빌어
    누에섶도 하려니와 고치나무 장만하소.
    고치를 따오리라 맑은 날 가리어서
    발 위에 엷게 널고 뙤약 볕에 말리우니
    쌀고치 무리고치 누른 고치 흰 고치를
    하나하나 나누어서 조금은 씨로 두고
    그 나머지 켜오리라 자애를 차려 두고
    왕채에 올려 내니 눈 같은 실오라기
    사랑스런 자애소리 금슬을 고르는 듯
    여자들 공을 들여 이 재미 보는구나.
    오월 오일 단오날에 빛깔이 산뜻하다.
    오이밭에 첫물 따니 이슬이 젖었으며
    앵두 익어 붉은 빛이 아침 볕에 눈부시다.
    목 맺힌 영계소리 연습삼아 자주 운다.
    시골 아녀자들아 그네는 뛴다 해도
    청홍 치마 창포 비녀 좋은 시절 허송 마라.
    노는 틈틈이 할 일이 약쑥이나 베어 두소.
    하느님 느그러워 뭉게뭉게 구름 지어 때
    미쳐 오는 비를 뉘 능히 막을소냐
    처음에 부슬부슬 먼지를 적신 뒤에 밤 되어
    오는 소리 주룩주룩 하는 구나.
    관솔불 둘러앉아 내일 일 마련할 때
    뒷 논은 뉘 심으고 앞밭은 뉘가 갈꼬
    도롱이 접사리며 삿갓은 몇 벌인고
    모찌기 자네 하고 논삶이 내가 함세.
    들깻모 담뱃모는 머슴아이 맡아 내고
    가짓모 고춧모는 아기딸이 하려니와
    맨드라미 봉숭아로 너무 즐거워 하지 마라.
    아기 어멈 방아 찧어 들바라지 점심하소.
    보리밥 찬국에 고추장 상치쌈을 식구들
    헤아리니 넉넉히 준비하소.
    새참 때 문을 나서니 개울에 물 넘는다.
    농부가로 답을 하니 격양가 아니런가.
  • 유월이라 늦여름 되니 소서 대서 절기로다.
    큰 비도 때로 오고 더위도 극심하다.
    초록이 무성하니 파리 모기 모여들고
    따 위에 물 고이니 참개구리 소리 난다.
    봄보리 밀 귀리를 차례로 베어 내고
    늦은 콩 팥 조 기장을 베기 전에 심어 놓아
    땅힘을 쉬지 말고 알뜰히 이용하소.
    젊은이 하는 일이 김매기뿐이로다.
    논 밭을 번갈아 삼사차 돌려 맬 때
    그 가운데 목화밭은 더욱 힘을 써야 하니
    틈틈이 나물밭도 김매 주고 잘 가꾸소.
    집터 울밑 돌아가며 잡풀을 없게 하소.
    날 새면 호미 들고 긴긴 해 쉴 틈 없이
    땀 흘려 흙이 젖고 숨 막히고 맥 빠진 듯
    때마침 점심밥이 반갑고 신기하가.
    정자나무 그늘 밑에 앉을 자리 정한 뒤에
    점심 그릇 열어 놓고 보리 단술 먼저 먹세.
    반찬이야 있고 없고 주린 창자 채운 뒤에
    맑은 바람 배부르니 낮잠이 맛있구나.
    농부야 근심 마라 수고하는 값이 있네.
    오조 이삭 푸른 콩이 어느 사이 익었구나.
    이로 보아 짐장하면 양식 걱정 오랠소냐
    해진 뒤 돌아올 때 노래 끝에 웃음이라
    자욱한 저녁 내는 산촌에 잠겨 있고
    달빛은 아스라이 발길을 비추누나.
    늙은이 하는 일 아주 없다 하겠느냐.
    아침 일찍 오이 따기 뙤약 볕에 보리 널기
    그늘에서 누역 만들기 창문 앞에 줄 꼬기라
    하다가 고달프면 목침 베고 허리 피고
    북쪽 바람 잠이 드니 좋은 세월이로구나
    잠 깨어 바라보니 급한 비 지나가고
    먼 나무에 쓰르라미 해지기를 재촉한다.
    할머니가 하는 일은 여러 가지 못 되지만
    묵은 솜 들고 앉아 알뜰히 피어 내니
    장마 때의 심심풀이 낮잠 자기 잊었도다.
    삼복은 속절이요 유두는 좋은 날이라.
    원두밭에 참외 따고 밀갈아 국수하여
    사당에 올린 다음 모두 모여 즐겨 보세.
    아녀자 헤피 마라 밀기울 한데 모아
    누룩을 만들어라 유두 누룩 치느니라.
    호박나물 가지김치 풋고추 양념하고
    옥수수 새 맛으로 일 없는 사람 먹어 보소.
    장독을 살펴보아 제 맛을 잃지 마소.
    맑은 장 따로 모아 익는 대로 떠내어라.
    비 오면 꼭 덮고 아가리를 깨끗이 하고
    이웃 마을 힘을 모아 삼 구덩이 파보세.
    삼대를 베어 묶어 익게 쪄 벗기리라.
    고운 삼 길쌈하고 굵은 삼 밧줄 꼬고
    촌집에 중요하기는 곡식에 버금가네.
    산 밭 메밀 먼저 갈고 갯가 밭 나중 가소.
  • 칠월이라 한여름 되니 입추 처서 절기로다.
    화성은 서쪽으로 가고 미성은 하늘 복판이라.
    늦더위 있다 해도 계절을 속일소냐.
    빗줄기 가늘어지고 바람도 다르구나.
    가지 위의 저 매미 무엇으로 배를 불려
    공중에 맑은 소리 다투어 자랑하는가.
    칠서게 견우 직녀 흘린 눈물 비가 되어
    섞인 비 지나가고 오동잎 떨어질 때
    눈섭 같은 초승달은 서쪽 하늘에 걸리고
    슬프다 농부들아 우리 일 다해 가네.
    얼마나 남았으며 어떻게 되어 갈까.
    마음을 놓지 마소 아직도 멀고 멀다.
    꼴 거두어 김매기 벼 포기에 피 고르기
    낫 갈아 두렁 깎기 선산에 벌초하기
    거름을 많이 베어 더미 지어 모아 놓고
    이른 논에 새 보기와 이른 밭은 허수아비
    밭가에 길도 닦고 덮힌 흙도 쳐올리소.
    기름지고 연한 밭에 거름하고 깊게 갈아
    김장할 무 배추 남 먼저 심어 놓고 가시
    울 미리 막아 잃지 않게 하여 두소.
    부녀들도 생각 있어 앞일을 헤아리고
    베짱이 우는 소리 자네를 위함이라
    저 소리 깨쳐 듣고 정신을 가다듬어
    장마를 겪었으니 집안을 돌아보아
    곡식도 바람 쐬고 옷가지 말리시오.
    명주 조각 어서 뭉쳐 춥기 전에 짜아 내고
    늙으신 어른 기운 빠져 환절기를 조심하고
    가을이 가까우니 입는 옷 살피시오.
    빨래하여 바래고 풀 먹여 다듬을 때
    달빛 다듬이 소리소리마다
    바쁜 마음 부녀자 힘들지만 한편으론 재미있다.
    채소 과일 흔할 때에 뒷날을 생각하여
    박 호박 얇게 썰어 말리고 오이 가지 짜게 절여
    겨울에 먹어 보소 귀한 반찬 또 있을까
    면화밭 자주 살펴 일찍 익은 목화 피었는가
    가꾸기도 하려니와 거두기도 달렸느니
  • 팔월이라 중추가 되니 백로 추분이 있는 절기로다.
    북두칠성의 국자 모양의 자루가 돌아 서쪽을 가리키니,
    서늘한 아침 저녁 기운은 가을의 기분이 완연하다.
    귀뚜라미 맑은 소리가 벽 사이에서 들리는구나.
    아침에 안개가 끼고 밤이면 이슬이 내려,
    온갖 곡식을 여물게 하고, 만물의 결실을 재촉하니,
    들 구경을 돌아보니 힘들여 일한 공이 나타나는구나.
    온갖 곡식의 이삭이 나오고
    곡식의 알이 들어 고개를 숙여,
    서풍에 익는 빛은 누런 구름이 이는 듯하다.

    눈같이 흰 목화송이, 산호같이 아름다운 고추 열매,
    지붕에 널었으니 가을 볕이 맑고 밝다.
    안팎의 마당을 닦아 놓고 발채와 옹구를 마련하소.
    목화 따는 다래끼에 수수 이삭과 콩가지도 담고,
    나무꾼 돌아올 때 머루 다래와 같은 산과일도 따오리라.
    뒷동산의 밤과 대추에 아이들은 신이난다.
    알밤을 모아 말려서 필요한 때에 쓸 수 있게 하소.

    명주를 끊어 내어 가을볕에 표백하고,
    남빛과 빨강으로 물을 들이니
    청홍이 색색이로구나.
    부모님 연세가 많으니 수의를 미리 준비하고,
    그 나머지는 마르고 재어서 자녀의 혼수하세.

    지붕 위의 익은 박은 긴요한 그릇이라.
    대싸리로 비를 만들어 타작할 때 쓰리라.
    참깨 들깨를 수확한 후에 다소 이른 벼를 타작하고
    담배나 녹두 등을 팔아서 아쉬운 대로 돈을 만들어라.
    장 구경도 하려니와 흥정할 것 잊지 마소.
    북어쾌와 젓조기를 사다가 추석 명절을 쇠어 보세.
    햅쌀로 만든 술과 송편,
    박나물과 토란국을 조상께 제사를 지내고
    이웃집이 서로 나누어 먹세.

    며느리가 휴가를 얻어 친정에 근친 갈 때에,
    개를 잡아 삶아 건지고 떡고리와 술명을 함께 보낸다.
    초록색 장옷과 남빛 치마로 몸을 꾸미고 다시 보니,
    농사 짓기에 지친 얼굴이 원기가 회복되었느냐.
    추석날 밝은 달 아래 기를 펴고 놀다 오소.

    금년에 할 일을 다 못 했지만 내년 계획을 세우리라.
    풀을 베고 더운가리하여 밀과 보리를 심어 보세.
    끝까지 다 익지 못했어도 급한 대로 걷고 가시오.
    사람의 일만 그런 것이 아니라 자연 현상도 마찬가지이니,
    잠시도 쉴 사이가 없이 마치면서 다시 새로운 것이 시작되도다.
  • 구월이라 늦가을이니 한로 상강 절기로다.
    제비는 돌아가고 떼기러기 언제 왔느냐
    창공에 우는 소리 찬 이슬 재촉한다.
    온 산 단풍은 연지를 물들이고
    울 밑 노란 국화 가을 빛깔 뽐낸다.
    구구절 좋은 날 꽃부침개로 제사 지내세
    절기를 따라가며 조상 은혜 잊지 마소.
    보기는 좋지만은 추수가 더 급하다.
    들마당 집마당에 개상에 탯돌이라
    습한 논은 베어 깔고 마른 논은 메 두드려
    오늘은 점근벼요
    내일은 사발벼라 밀따리
    대추벼와 동트기 경상벼라
    들에는 조 피 더미 집 근처
    콩 팥 가리 벼 타작 마친 뒤에
    틈 나면 두드리세.
    비단조차 이부꾸리 매눈이콩 황부대를
    이삭으로 먼저 잘라 종자로 따로 두소
    젊은이는 태질이요 계집 사람 낫질이라
    아이는 소 몰고 늙은이는 섬 싸매기
    이웃집 힘을 합쳐 제 일 하듯 하는 것이
    뒷목 줍기 짚 널기와 마당 끝에 키질하기
    한쪽에서 면화 트니 씨아 소리 요란하다.
    틀 차려 기름짜기 이웃끼리 합력하세.
    등유도 하려니와 음식도 맛이 나네.
    밤에는 방아 찧어 밥살을 장만할 때
    찬서리 긴긴 밤에 우는 아기 돌아볼까
    타작 점심 차려 내니 닭국 배갈 없을소냐
    새우젓 계란찌게 벌어지게 차려 놓고
    배춧국 무나물에 고춧잎 장아찌라.
    큰 가마로 지은 밥이 태반이나 모자란다.
    추수하여 흔할 때에 나그네도 대접하니
    한동네 이웃하여 한들에 농사하니
    수고도 나눠 하고 없는 것도
    서로 도와 이때를 만났으니
    즐기기도 같이 하세.
    아무리 바쁘지만 일하는 소 보살펴라
    조피대에 살을 찌워 제 공을 갚을지라.
  • 시월은 초겨울이니 입동 소설 절기로다.
    나뭇잎 떨어지고 고니 소리 높이 난다.
    듣거라 아이들아 농사일 끝났구나.
    남의 일 생각하여 집안 일 먼저 하세
    무 배추 캐어 들여 김장을 하오리라.
    앞 냇물에 깨끗이 씻어 소금 간 맞게 하소.
    고추 마늘 생강 파에 조기 김치 장아찌라
    독 옆에 중두리요 바탱이 항아리라.
    양지에 움막 짓고 짚에 싸 깊이 묻고
    장다리 무 아람 한 말 수월찮게 간수하소.
    방고래 청소하고
    바람벽 매흙 바르기 창호도 발라 놓고
    쥐구멍도 막으리라.
    수숫대로 울타리 치고 외양간에 거적 치고
    깍짓동 묶어 세우고 땔나무 쌓아 두소
    우리 집 부녀들아 겨울옷 지었느냐
    술 빚고 떡하여라 강신날 가까웠다.
    꿀 꺾어 단자하고 메밀 찧어 국수 하소
    소 잡고 돼지 잡으니 음식이 널렸구나.
    들 마당에 천막 치고 동네 사람 모여 앉아
    노소 차례 틀릴세라 남녀 분별 따로 하소.
    풍물패 불러오니 광대가 줄무지라
    북 치고 피리 부니 솜씨가 제법이구나.
    이풍헌 김첨지는 잔소리 끝에 취해 쓰러지고
    최권농 강약정은 체괄이 춤을 춘다.
    잔 들어 올릴 때에 동장님 높이 앉아 잔 받고
    하는 말씀 자세히 들어 보소
    어와 오늘 놀음 이 놀음 뉘 덕인가
    하늘 은혜 그지없고 임금 은혜 끝이 없다.
    다행히 풍년 만나 굶주림을 벗어났구나
    향약은 아니라도 마을 규약 없을소냐
    효제 충신 대강 알아 도리를 잃지 마소
    사람의 자식 되어 부모 은혜 모를소냐
    자식을 길러 보면 그제야 깨달으리
    온갖 고생 길러 내어 결혼을 시켰는데
    제 혼자만 생각하여 부모 봉양 잊을소냐
    기운이 없어지면 바라느니 젊은이라
    옷 음식 잠자리를 정성껏 살펴 드려
    어쩌다가 병 나실까 밤낮으로 잊지 마소
    섭섭한 마음으로 걱정을 하실 때에
    삐죽거려 대답 말고 좋은 얼굴 하여 보소
    들어온 지어미는 남편의 행동 보아
    그대로 따라 하니 보는 데 조심하소
    형제는 한 기운이 두 몸에 나눴으니
    귀중하고 사랑함이 부모의 다음이라
    간격 없이 합치고 네 것 내 것 따지지 마소
    남남끼리 모인 동서 틈나서 하는 말을
    귀에 담아 듣지 마소 자연히 따르리니
    몸가짐에 먼저 할 일 공손함이 첫째이니
    내 부모만 공경하고 남의 어른 다를소냐
    말씀을 조심하여 인사를 잃지 마소
    하물며 위아래 도리 높낮음이 분명하다.
    내 도리 다하면 잘못 짓지 않으리니
    임금의 백성되어 은덕으로 살아가니
    거미 같은 우리 백성 무엇으로 갚아 볼까
    갚아야 될 환곡이 그 무엇 많다 할꼬
    기한 전에 바쳐야 사람 구실 한 것이라
    하물며 전답 세금 토지따라 나눠 내니
    생산량을 생각하면 십일세도 못 되나니
    그러나 굶주리면 재해로 줄여 주니
    이런 일 잘 알면 세금 내기 거부할까
    한 동네 몇 집에 여러 성씨 모여 사니
    서로 믿지 아니하면 화목할 수 없으니
    결혼을 서로 돕고 장례를 보살피며
    어려울 때 도와 주고 필요할 때 꾸어 주어
    나보다 잘 사는 이 욕심 내어 시비 말고 그
    중에도 외로운 이 특별히 구휼하소
    정해진 자기 복 억지로 못 바꾸니
    자네들 분수 알고 내 말을 잊지 마소
    이대로 살아가면 딴 생각 아니 나리
    주색잡기 하는 사람 처음부터 그랬을까
    우연히 잘 못 들어 한 번 하고 두 번 하면
    마음이 방탕하여 그칠 줄 모르나니
    자네들 조심하여 적은 허물 짓지 마소
  • 십일월은 한겨울이라 대설 동지 절기로다.
    바람 불고 서리 치고 눈 오고 얼음 언다.
    가을에 거둔 곡식 얼마나 되었던가
    몇 섬은 환곡 갚고 몇 섬은 세금 내고
    얼마는 제사 지내고 얼마는 씨앗 하고
    도지도 되어 내고 품값도 갚으리라
    꾼 돈 꾼 벼를 낱낱이 갚고 나니
    많은 듯하던 것이 남은 것 거의 없다.
    그러한들 어찌할꼬 양식이나 아껴 보자
    콩기름 우거지로 죽이라도 다행이다.
    여자들아 네 할일이 메주 쓸 일 남았구나
    익게 삶고 매우 찧어 띄워서 재워 두소
    동지는 좋은 날이라
    양(陽)이 생기기 시작하는구나
    특별히 팥죽 쑤어 이웃과 즐기리라
    새 달력 널리 펴니 내년 절기 어떠한가
    해 짧아 덧이 없고 밤 길기 지리하다.
    공채 사채 다 갚으니 관리 면임 아니 온다.
    사립문 닫았으니 초가집이 한가하다.
    짧은 해 저녁되니 자연히 틈 없나니
    등잔불 긴긴 밤에 길쌈을 힘써 하소
    베틀 곁에 물레 놓고 틀고 타고 잣고 짜네
    자란 아이 글 배우고
    어린아이 노는 소리
    여러 소리 재잘거림이 집안이 재미구나
    늙은이 일 없으니 돗자리나 매어 보세
    외양간 살펴보아 여물을 가끔 주소
    짚 넣어 만든 두엄 자주 쳐야 모이나니
  • 십이월은 늦겨울이라 소한 대한 절기로다.
    눈 덮힌 산봉우리 해 저문 빛이로다.
    새해 전에 남은 날이 얼마나 걸렸는가.
    집안 여인들은 새 옷을 장만하고
    무명 명주 끊어 내어 온갖 색깔 들여 내니
    짙은 빨강 보라 엷은 노랑 파랑 짙은 초록 옥색이라
    한편으로 다듬으며 한편으로 지어 내니
    상자에도 가득하고 횃대에도 걸었도다.
    입을 것 그만하고 음식장만 하오리라
    떡쌀은 몇 말이며 술쌀은 몇 말인고
    콩 갈아 두부하고 메밀쌀 만두 빚소
    설날 고기는 계에서 나오고
    북어는 장에 가서
    납평일에 덫을 묻어 잡은 꿩 몇 마린가
    아이들 그물 쳐서 참새도 지져 먹세
    깨 강정 콩 강정에 곶감 대추 생밤이라
    술동이에 술 들이니 돌 틈에 샘물 소리
    앞뒷집 떡 치는 소리 예서 제서 들리네
    새 등잔 세발 심지 불을 켜고 새울 때에
    윗방 봉당 부엌까지 곳곳이 떠들썩하다.
    초롱불 오락가락 묵은 세배 하는구나
    어와 내 말 듣소 농업이 어떠한고
    일 년 내내 힘들지만
    그 가운데 즐거움 있네
    위로 나라를 받들고 아래로
    부모를 봉양하니형제 처자 혼인
    장례 먹고 쓰고 하는 것을
    농사 짓지 아니하면 돈 감당 누가할까
    예로부터 이른 말이 농업이 근본이라
    배 부려 일을 삼고 말 부려 장사하기
    전당 잡고 돈 꿔주기 장날에 이자 놓기
    술장사 떡장사며 주막차리고 가게 보기
    아직은 잘살지만 한 번을 실수하면
    거지 빚쟁이 살던 곳 남은 자취도 없다.
    농사는 믿는 것이 내 몸에 달렸느니
    계절도 가고 오고 농사도 풍흉 있어
    홍수 가뭄 바람 우박 없기야 하랴마는
    열심히 힘을 쏟아 온 가족이 한마음 되면
    아무리 흉년이라도 굶어 죽지 않으리니
    내 고향 내가 지키고 떠날 뜻 두지 마소
    하늘은 너그러워 화를 냄도 잠깐이로다.
    자네도 헤아려 십 년을 내다보면
    칠분은 풍년이요 삼분은 흉년이라
    갖가지 생각 말고 농업에 오로지 하소
    하소정 빈풍시를 성인이 지었는데
    이 뜻을 본받아서 대강을 기록하니
    이 글을 자세히 보아 힘쓰기를 바라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