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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례

서원의 제례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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笏記春秋享圖(도산서원)

笏記春秋享圖(도산서원)

서원은 성균관이나 향교와 같이 제향공간과 강학공간을 갖추었으며, 유교의 예제적 질서에 입각해 있었다. 서원 역시 관학과 마찬가지로 사림의 교육을 위한 장소와 선현(先賢) 봉사(奉祀)의 공간과 기능이 필요하였다. 다만 봉사의 대상이 문묘의 경우 국가적인 기준에 의해 선정된 것이었다면, 서원은 사적인 기준에 의해 선정되었다.

서원의 내삼문을 지나면 나오는 사당은 서원 경내에서 가장 깊숙하고 지존한 곳에 자리잡는다. 사당은 제향공간의 중심으로서, 사림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는 선현의 위패를 모시고 춘추로 제향을 지낸다. 사당에 배향된 인물은, 주로 성균관이나 향교에서 공자와 그 제자들을 모시는 것과 달리, 안향·정몽주·이황 등과 같이 성리학 발전에 크게 기여한 도덕과 학문이 높거나, 충절(忠節)로 이름이 높은 인물들이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이르러 서원은 교육의 기능보다 사묘(祠廟)의 기능이 강조되었다. 문중에 의해 사원이 건립되고 조상 가운데 뛰어난 인물이 제향되었고, 충절로 이름이 높은 인물들이 배향의 대상이 되었다. 충효를 중히 여기는 유교사회에서는 조상을 공경하는 조상 숭배사상과 그 은덕에 보답하려는 보본사상이 강조되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특정 위인이나 선현을 받들어 모시고자 하는 숭현사상(崇賢思想)의 발생을 보여 마침내 사묘(祠廟)제도를 낳았다.

서원의 향례(享禮)는 일반적으로 음력 2월과 8월의 중정(中丁日 : 그 달의 일진 중 중간에 있는 丁日), 또는 3월과 9월의 중정일에 행하였다. 향례가 있게 되면, 제사 사흘 전부터 제관들이 모여 재계를 깨끗이 하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향례를 행한다. 제관 구성은 제사일을 맡아보는 집사(執事), 홀기(笏記)를 맡아 읽는 찬자(贊者), 축을 읽는 축관(祝官), 술을 따르는 사준관(司樽官), 반찬을 만지는 집찬자(執饌者), 첫 술잔을 올리는 초헌관, 둘째 잔을 올리는 아헌관, 마지막 잔을 올리는 종헌관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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