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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관리의 길

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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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권(책문, 이재수) 교남빈흥록 교남과방록
<이숭원(李崇元)의 문과 합격 교지(보물 651-1호, 1453년)>

<이숭원(李崇元)의 문과 합격 교지(보물 651-1호, 1453년)>

조선시대 관료가 되는 데는 세가지 방식이 있었다. 과거시험을 통하거나, 학행과 도덕을 바탕으로 유일(遺逸)로 천거되거나, 문음(門蔭)으로 관직에 진출하는 방식이었다. 과거시험을 살펴보면 문과를 합격한 경우에는 문반직(文班職, 또는 東班職)에, 무과를 거친 경우 무반직(武班職, 西班職)에 임용되었고, 율학(律學) · 산학(算學) · 역학(易學) · 의학(醫學) · 역학(曆學) 등의 잡과를 거친 경우 기술직에 임용되었다. 기술직의 경우 과거를 거치지 않고 간단한 시험과 실기를 시험보는 취재(取才)라는 과정을 통해 임용되기도 하였다.

천거제도의 경우, 『경국대전』에 매년 정월에 천거하도록 규정되었으나 실제 지켜지지는 않았고 조선후기의 경우 도덕과 학식을 지닌 이들을 천거하여 특별히 국왕의 명으로 관직을 제수하였다.
문음은 공신(功臣)이나 정3품 이상 실직(實職)을 거친 관료의 자서제질(子壻第姪) 등을 관리로 선발하는 제도로, 고려의 음서(蔭敍)에서 유래되었으나 조선에 들어 대폭 축소되었다.

과거를 실시 시기별로 나누면, 3년마다 일정 인원을 선발하는 식년시(式年試), 부정기적으로 선발 인원수에 변동이 있을 수 있는 별시(別試)가 있다. 또 실시 명분별로 나누면, 증광시, 알성시, 정시, 춘당대시, 황감제(외방별시)등이 있었다.

문과에서는 초시나 복시를 막론하고 초장에서는 사서오경에 대한 이해를 필기 · 구두시험으로 평가하였고, 중장에서는 문학을 시험하는 부와 외교문서의 문체인 표 · 전의 문장 능력을 평가하고, 종장에서는 당시 급선무에 대한 논술시험을 치렀다.

조선시대에 문과에 응시하기 위해 반드시 성균관에 입학하여 공부할 필요는 없다. 소과에 합격하는 것만으로도 문과에 응시할 자격을 얻었으므로, 성균관 입학시험이 소과라고 할수 있다. 소과는 생진과(生進科)라고 해서 합격하게 되면 성균관에 입학하거나, 대과를 바로 볼 수 있고 하급관료로 진출할 수 있었다. 소과의 초시는 전국적으로 생원시, 진사시를 각각 700명씩 뽑고, 서울에서 시행되는 복시에서 각각 100명씩을 최종 선발한다. 조선시대의 지배체제는 한마디로 중앙집권적 양반관료체제였다. 따라서 지배층이 되기 위해서는 양반의 관료가 되어야만 했다. 한 집안이 4대에 걸쳐 관리에 나서지 못하면 양반 신분을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품계가 높은 문반은 고위 무반의 직책을 겸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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