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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촌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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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군자 매심사 선생유묵
<김홍도의 활쏘기>

<김홍도의 활쏘기>

조선의 사대부들은 성리학적 교양을 위하여 여러 친우(親友)나 동료들과 모여 글로써 교유하는 시회(詩會) 모임을 가졌다. 특히 같은 관아에 재직하는 관인들은 봄·가을의 세시절일(歲時節日)에 산과 강에 모여 시와 술을 즐기며 친목을 도모하였다. 조선 중기에는 기로회(耆老會) · 기영회(耆瑛會) 등과 같이 각종 계회(契會)가 성행하였고, 모임에 참석한 계원(契員)들은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시 · 서 · 화(詩書畵)로 교유하였다.

조선 전기의 시조문학은 사대부의 강호문학(江湖文學)을 그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맹사성의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는 우리나라 최초의 연시조로, 강호에서 자연을 즐기며 임금의 은혜를 생각하는 내용을 춘(春),하(夏),추(秋),동(冬) 4계절로 나누어 각 한 수씩 노래하였다. ‘강호사시가’는 이후 이황의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과 이이의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에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사대부들이 강호를 동경하고 산림에 파묻혀 시조문학을 산출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이후이다. 계속되는 사화(士禍)에 중앙정계로의 진출을 포기하고, 향촌에 은거하여 학문에 전념하고 후진양성에 힘쓰며 명철보신(明哲保身)을 꾀하는 사대부들이 늘어나면서, 도학정치의 이상을 자연에 부여하고 강호가도를 표방하였다. 한편, 주세붕의 ‘오륜가(五倫歌)’와 같이 오륜을 설명하는 등 훈민(訓民)의 계몽적 경향도 나타났는데 이는 당시 사림(士林)들이 자신의 이념을 향약을 통해 향촌사회에 구현하고자 한 사실과 관련된다.

양란 이후에는 윤선도의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등에서는 강호에서 누리는 기쁨과 충족감이 어부의 고양된 흥취와 더불어 아름답게 표현되었다. 이시기에는 시조는 점차 산문화 · 장편화 경향을 보였고 중인층 가객(歌客)들을 중심으로 한 가단(歌壇) 활동이 활발히 나타났다. 김천택의 『청구영언(靑丘永言)』이나 김수장의 『해동가요(海東歌謠)』 등은 18 · 19세기 에 이르러 시조가 사대부의 애호물에서 벗어나 중인, 평민에까지 폭넓게 수용되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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