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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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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례

문묘종사와 서원 배향
<문묘제례>

<문묘제례>

문묘(文廟)는 공적인 인정을 받는 것이고, 원사 종사(從祀)는 향촌사회에서 자파세력을 부식할 수 있는 거점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각 정파와 학파에서는 자파 인물의 문묘종사와 원사종사에 붕당정치의 역학관계에 따라 민활하게 움직였던 것이다. 우리나라 유현의 문묘종사 논의는 성리학적 의리명분론을 강조하고 공론을 선호하는 사림세력이 정계에 등장하면서 학문보다는 절의 문제와 같은 처신이 종사기준이 되었다. 이는 주자성리학의 근본이념인 의리명분론에 입각한 정통론의 강화와 주자성리학이 조선의 국학으로서 저작·소화·흡수의 단계를 거쳐 토착화가 이루어지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1681년(숙종 7) 9월, 기호학파의 두 종사(宗師)인 이이와 성혼이 문묘에 종사되었다. 문묘종사는 기본적으로 출처관과 학문에 대한 평가로 결정된다. 그러나 문묘종사가 정치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학파는 물론이고 정파를 떠나서도 생각할 수 없는 문제인 데에 있다. 문묘 종사의 청원은 유생들이 올리는 상소 가운데 청원소(請願疏)에 해당한다.

한편 서원에서는 주향(主享)에 따른 배향을 누가 먼저할 것인가의 문제로 학파와 가문간의 경쟁과 세력간의 길항(拮抗)관계는 조선후기에 특히 사회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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