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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권씨 <불천위제사>

안동권씨 <불천위제사>

동족마을은 16세기 혈연공동체 지연공동체를 기반으로 정착해 선조의 추숭사업을 추진하였고, 오랜시기 동안 향촌내 사회적 우위를 유지해 온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조선후기에 들어와 종법(宗法)적 사회질서가 자리잡히면서 적장자 중심의 운영체계는 보다 강화되는 양상으로 나타났다. 문중(門中)은 시대와 지역, 성씨에 따라 그 구성범위가 달르다. 보통 동종(同宗)의 자손으로 인식되는 범위를 문중으로 파악할 수 있다. 문중의 하위단위로는 파조(派祖)를 중심으로 하여 소종중을 구분되기도 한다.

문중 선조에 대한 봉사(奉祀), 선영(先塋)과 석물(石物), 비문(碑文)의 수수(授受), 의 시제(時祭), 문중인물의 문집의 간행, 족보의 발간 등을 통하여 종원의 동종(同宗)의식을 고양하고자 하였다. 조선후기에 제사는 사대봉사(四代奉祀)가 일반적이었으나, 국가나 지역사회 또는 문중이 인정하는 범위에서는 종가를 중심으로 불천위(不遷位) 제사를 모셨다. 불천위 제사와 시사(時祀)는 문중에서 주관하는 것이기 때문에 동족결합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다. 대부분의 이름난 동성마을에서는 여러 명의 불천위 제사를 갖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이를테면 풍산 류씨의 하회에서는 세 분의 불천위 제사를 올리고 있는데, 불천위로 추대된 분들의 부인 제사까지 올린다. 불천위 제사를 지낼 때는 그 마을에 살고 있지 않는, 즉 파(派)가 다른 사람들과 유림에서 참가하여 성황을 이룬다. 그리고 유력한 가문과의 족적 결합이나, 지역사류와의 교유를 통해 해당 지역에서 유력한 사회집단으로 기능하기도 하였다.

또한 지역사회와 문중에서 가난한 학생들의 교육에 대한 재정을 뒷받침하기 위해 학계(學契)라는 장학기금을 운영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문중에서는 종원(宗員)의 교육을 위해 문중서당을 운영하거나, 해당지역의 사찰을 지정하여 원찰(願刹)로 삼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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