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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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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신분구조>

<조선시대 신분구조>

조선시대는 각각의 신분에 맞게 경제적 역할도 달리한다는 직역론을 긍정한 사회이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사회적 역할은 각각 다르다는 것이다. 이는 조선초기에는 태어나면서 신분은 타고난다고 하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으나, 조선후기에 이르면 경제력의 차이와 사회적 변화에 의해 신분은 점차 성취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경영의 원리에 있어서도 근검의 가치와 함께 중용(中庸)의 원리는 중요시되었다.

조선시대는 일상생활에 있어서 근검의 가치를 중요시하였다. 경제적인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분에 넘치는 사치나 사욕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인식되었다. 커다란 집에서 호강한다는 의미의 고대광실(高臺廣室)을 이상적인 거주형태로 보지 않았다. 이와 달리 가난에 개의치 않고 성인의 도를 좇아 즐겁게 산다는 안빈낙도(安貧樂道)는 그같은 인식의 선비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후기에 사치풍조가 사회문제로 거듭 지적되었던 것은 그만큼 사치풍조가 그만큼 만연하였음을 의미함과 동시에, 사회적으로는 그것을 결코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았음을 의미한다. 안빈낙도는 개인적 차원에서 선비의 삶의 지향성을 표현함과 동시에, 사회적으로는 바람직한 인간상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퇴계 이황(李滉)도 치산이재(治産理財)에 결코 소홀하지 않았다. 그러나 퇴계는 가산(家産)의 증식에 적극 노력하면서도, 자손에게 농부나 향리의 속인처럼 재리(財利) 경영에 몰두해서는 안된다고 경계하였다. 유형원은 이익을 추구하는 인정을 용인하여 경제적 합리성을 중시하는 한편, 시장친화적인 경제사상을 진전시켰다. 민생의 안정과 국가재정의 확보를 위하여 농업 생산을 장려하고, 적절하고 법도에 맞는 수취(收取), 절용(節用), 기근 구제 등의 경제정책을 중시한 한 것은 중용의 원리에 입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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