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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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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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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대장간>

김홍도 <대장간>

조선시대에는 농지의 개간과 간척, 농기구의 변화, 수리시설의 확충 등을 위한 농본 정책이 실시되었으며, 민간에서도 농업 진흥을 위한 다양한 방안이 모색되었다. 이에 따라 농업기술의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
조선초기에 세종은 농잠서(農蠶書)의 편찬·간행 이외에 벼와 목화의 재배시험장을 설치하여 평안도와 함경도의 북변에도 재배를 시도하였다. 그리고 『칠정산(七政算)』 내·외편으로 확립된 역법의 실시와 측우법의 개발 등 과학기술의 진흥은 직간접적으로 농업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세조 대에는 양잠의 장려, 제언(堤堰)의 수리, 농서의 간행, 축산 장려 등 여러 가지 실천이 있었다. 뒤이어 성종 때에도 교서 반포와 친잠(親蠶) 등 양잠 장려, 농기구 제조 등 권농사업이 매우 활발하였다. 이와같이 조선 초기의 농업은 집권의 강화와 재정확보를 위한 과전법(科田法)의 실시와 그에 따르는 세제의 확립과 아울러 농본주의를 뒷밭침할 권농정책에 힘입은 바 컸다고 할 수 있다.

조선전기의 당시의 벼 재배는 건삶이(乾耕)·무삶이(水耕)·모내기법·밭벼법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밭작물의 경작방식으로는 2년 3작·흩짓기·섞어짓기·사이짓기 등이 작물·토질·기후에 따라 적절히 채택되었다. 농기구는 현재 볼 수 있는 재래농구 이외에도 따비·끌개·번지·제초기 등도 사용되었으며, 비료로는 두엄·외양간 두엄·인분·우마분 등이 사용되었으며, 질고 물이 찬 땅에는 객토를 하였다. 그리고 각종 과목류는 국가의 진상품으로 재배가 장려되었다.

임진왜란 중 또는 난후의 중국·일본과의 통교(通交)에 따라 몇몇 외래 작물의 재배가 시작되었다. 아메리카대륙 원산인 고추·호박·담배 등의 세 가지 작물이 선조·광해군 때에 일본 또는 중국에서 도입되어 신속하게 보급됨으로써 전국에서 재배되었다. 영조 대에는 제방을 개수하며 수차(水車)를 제조, 보급하는 등 수리정책에 힘을 썼다. 정조 대에는 제언의 개축, 「제언절목(堤堰節目)」의 전국 반포, 새로운 제언의 축조가 이루어졌으며, 농서를 널리 구하기도 하였다. 조선후기에는 연이은 저온현상으로 인한 흉작이 지속되는 가운데에서도 목화와 인삼 재배 등은 그 기술과 경영이 발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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