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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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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암일고(謙菴逸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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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명 겸암일고(謙菴逸稿) 유물형태 책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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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겸암일고(謙菴逸稿)』는 유운룡(柳雲龍 ; 1539∼1601)의 문집이다. 이 시문집의 권두(卷頭)에는 1742년(영조 18)에 쓴 이광정(李光庭)의 서문과 1743년에 정종노(鄭宗魯)가 쓴 서문과 목록이 있다.
권1은 시 48수 중 《경차퇴계선생유청량산운(敬次退溪先生遊淸凉山韻)》 2수는 1564년에 퇴계의 문인들과 함께 그가 선생에게 지어 바친 것으로, 본집 맨 뒤에 그의 친필유묵으로 실려있다. 권2는 앞에 《청안동부호소(請安東復號疏)》 1편이 있는데, 이는 읍인(邑人)을 위한 대작(代作)으로 1576년(선조 9) 적자(賊子) 신복(申福)이 친모를 살해한 사건 때문에 부(府)에서 현(縣)으로 강등된 안동의 현호(縣號)를 부(府)로 복구해 달라는 내용이다. 권3에는 서 65편이 실려있는데, 내용은 일상적인 것들이다. 권4에는 잡저(雜著) 7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족중입의(族中立議)》는 유씨문중의 종회규약(宗會規約)이다. 권5에는 잡저 1편, 기(記) 3편, 지발(識跋) 3편, 제문 4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부록 권1에는 연보, 권2에는 그의 행장과 묘지(墓誌), 제문 15편, 겸암정사기 등이 실려있다. 권말에는 1727년에 김응조와 후손 유원지가 쓴 발문이 실려 있다.
퇴계는 겸암의 유묵시에 수(雖)자를 종(縱)자로 친히 교정해 주고 끝에 퇴계가 그의 자인 유이득(柳而得)을 친필로 써 주었다.
유운룡은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로, 본관은 풍산(豊山)이며, 자는 응현(應見), 호는 겸암(謙菴)이다. 아버지는 중영이며, 어머니는 안동김씨(安東金氏)로 진사 광수(光粹)의 딸이다. 성룡(成龍)의 형으로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관리로서는 백성의 생업을 보호하는데 힘썼고, 1592년 임진왜란시에는 어머니를 비롯한 온 가족을 구출하여 모두가 그의 효심을 칭찬하였다. 학문에서는 이기설이나 사칠논변(四七論辨)은 이황의 이기이원론에 근거를 두고 변증을 시도하려 하였다. 안동의 화천서원(花川書院)에 제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