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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현판

염립재(廉立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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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슬라이드쇼
유물정보 테이블
유물명 염립재(廉立齋) 유물형태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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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졸재 이산두(懶拙齋 李山斗 ; 懶에서 취한 동일한 뜻이므로 ‘나’ 라 하지 않고 ‘난’ 으로 발음함)문중의 현판이다. 이산두는 20여년 동안 관직을 다니다가 벼슬을 모두 버리고 고향인 풍산현 동쪽 단구촌(현 안동시 풍산읍 하리 1리 우렁골)에 터전을 잡고 살았다. 그는 평생 청백(淸白)하여 스스로 호를 갖지 않았다. 그는 고향에서 승진하여 여러 번 관직에 나올 권유를 받았으나 모두 부임하지 않고, 우렁골 봉산 아래에 작은 재실을 짓고 그 곳에서 여생을 보내다 93세로 졸하였다. 소산 이광정(1714∼1789)이 1783년에 쓴 행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