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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고문서

교첩(이문량-장사랑)(敎牒(李文樑-將仕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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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정보 테이블
유물명 교첩(이문량-장사랑)(敎牒(李文樑-將仕郞)) 유물형태 고문서
기탁자 크기 48.0X74.0

1520년(중종 15) 윤8월에 학생(學生) 이문량(李文樑, 1498~1581)을 장사랑으로 임명하는 이조교첩이다.
이문량은 본관이 영천(永川), 자는 대성(大成), 호는 벽오(碧梧) 또는 녹균(綠筠)이다. 아버지는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이현보(李賢輔)이며,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충순위(忠順衛) 권효성(權孝誠)의 딸이다. 1520년(중종 15) 이후 장사랑·통사랑·종사랑·적순부위(迪順副尉)·병절교위(秉節校尉) 등의 많은 음직(蔭職)이 내려지고, 1559년(명종 14) 평릉도찰방(平陵道察訪)이 제수되었다. 특히, 이황(李滉)과는 이웃에 살면서 절친하였는데, 1564년 그와 함께 청량산(淸凉山)을 유람하면서 시를 읊고 학문을 토론하기도 하였다. 뒤에 이황의 고제가 된 이덕홍(李德弘)·황준량(黃俊良) 등을 초년에 가르친 적도 있다. 효성이 지극하고 우애가 독실하였으므로 사람들은 중국 삼국시대의 백미(白眉) 마량(馬良)에 비유하였다. 저서로는 『벽오문집』 2권이 있다.
교첩은 주로 5품 이하의 문무관리를 임명할 때 사용되었다. 5품 이하는 낭계(郞階)라 하며, 대간(臺諫)의 서경을 거친 뒤 왕명을 받아 이조 또는 병조에서 발령하였다. 연호 위에는 이조지인(吏曹之印) 또는 병조지인이 찍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