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한국국학진흥원

책판

대암선생문집(臺巖先生文集)
위로 이동 | 이전 페이지로 이동 | 다음 페이지로 이동
이전 이미지로 다음 이미지로
1/1 슬라이드쇼
유물정보 테이블
유물명 대암선생문집(臺巖先生文集) 유물형태 책판
기탁자 크기

『대암선생문집』은 최동집(崔東㠍, 1586~1661)의 시문집이다. 최동집의 본관은 월성(月城), 자는 진중(鎭仲), 호는 대암(臺巖)이며,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인이다. 1616년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정묘호란에는 의병을 규합하였다.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 모당(慕堂) 손처눌(孫處訥) 등과 도의교를 맺었다. 이 책은 처음 최흥원(崔興遠)이 유고를 수습하였고, 5대손 흥벽(興璧)등이 수정, 편집하여 순조연간에 간행하였다. 권두에 정종로(鄭宗魯)의 서문과 권말에 흥벽의 발문이 있다.
권1에 시 78수, 권2에 서(書) 5편, 서(序) 1편, 기 2편, 발 1편, 권3에 제문 4편, 묘갈명 2편, 잡저 5편, 권4에는 부록으로 만사 1수, 가장 1편, 이상정이 찬한 묘갈명 1편, 채제공이 찬한 농연유허비명(聾淵遺墟碑銘)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잡저의 「재화책(財貨策)」은 국가의 재정을 풍족하게 하면서 백성도 유족하게 하는 경국의 방도를 밝힌 것으로, 국가재정의 근본이 양입과 절용에 있음을 지적하였다. 기문 중 「연경서원인지당상량기(硏經書院仁智堂上樑記)」는 1563년에 서원이 창건된 뒤 임진왜란을 겪어 폐허가 되었으나 재실을 복설하고 1645년 봄에 인지당 까지 지은 전말을 소상하게 기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