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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문집(耕山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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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정보 테이블
유물명 경산문집(耕山文集) 유물형태 책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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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문집』은 최시술(崔蓍述, 1839∼1923)의 시문집이다. 최시술의 자(字)는 국언(國彦), 호(號)는 경산(耕山), 본관(本貫)은 경주(慶州)이다. 이 책은 1929년 최운성(崔雲聲)이 간행했다. 권 1∼2의 시는 증여시와 만시가 대부분이고, 선유들의 차운시도 많다. 서(書) 가운데 「상지헌최선생(上止軒崔先生)」은 스승인 지헌(止軒)선생과 『중용』의 도심(道心)과 인심(人心)에 대하여 질의한 것이고, 「답우해찬(答禹海纘)」은 『태극도설(太極圖說)』에 관한 논변이다. 잠(箴) 가운데 「알인욕잠(口人慾箴)」은 인심유위(人心惟危)를 강조한 글이다.
최시술은 족형 지헌(止軒) 이효술(李孝述)에 청업(請業)하였고, 성리서(性理書)에 몰두하였다. 1885년(철종 8)에 부친상을 당하고, 또 얼마 되지 않아 둔암공(遁岩公)이 하세(下世)하자 상장(喪葬)을 예(禮)에 따랐다. 그의 외구(外舅)가 자녀에게 전토(田土)를 평균상속(平均相續)하려 하였으나 그가 받지 않았다. 또 처가 몰한 후에 제전(祭田)을 매치(買置)하고자 하였으나 사양하였다. 1894년 이후로 시국(時局)이 변할 것을 내다보고 풍각(豐角) 경산(耕山) 아래에서 거하여, 호를 경산(耕山)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