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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책판

묵재집(黙齋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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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정보 테이블
유물명 묵재집(黙齋集) 유물형태 책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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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재집』은 조선후기의 학자 김시엽(金始燁, 1662∼1732)의 시문집이다. 김시엽의 본관은 함창(咸昌), 자는 개백(開伯), 호는 묵재(默齋)이다. 이 문집은 그의 후손 호상(鎬相)에 의해 유문이 수집되고 5대손인 병조참판 진하(鎭河)의 교정을 거쳐 간행되었으나, 정확한 간행연도는 알 수 없다. 이 중 시의 「신계십이영(新溪十二詠)」은 교화(嬌花)·치송(稚松)·농가(農歌)·목적(牧笛) 등의 전원적인 풍경을 소재로 삼아 소박한 감회를 표현한 작품이다. 「무제(無題)」도 존왕양이(尊王攘夷)를 고조(高調)하여 명나라를 높이고 청나라를 배척하는 한편, 병자호란의 치욕을 상기하며 삼학사의 충절을 찬양한 내용의 서사적인 표현으로 되어 있다. 「망장릉(望莊陵)」은 영월에 있는 단종의 능을 바라보며 지은 것으로, 두견새의 제혈(啼血)이 아직도 남아 있어 슬픈 마음에 나그네의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표현으로 비통한 심정을 나타내었다. 「동지음(冬至吟)」·「역서(曆書)」등은 계절의 정서를 표현한 것이기보다는 역수(曆數)와 천문에 관한 지식을 동원한 이학시(理學詩)이다. 이밖에 제문에는 「사직단기우문(社稷壇祈雨文)」 등 기우문 4편이 포함되어 있다.
김시엽은 고모부인 유세명(柳世鳴)에게 수학하였다. 1702년(숙종 28)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 때에는 송만종(宋萬宗)·박태래(朴泰來) 등과 영남에 격문을 내어 창의병을 모집하였으나, 반란군이 관군에 의해 패하자 해산하였다. 1721년(경종 1) 이후부터 소거지(所居地) 철탄산(鐵呑山)의 이름을 따서 철남옹(鐵南翁)이라 자호(自號)하고 산수와 시주(詩酒)로 자오(自娛)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