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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현판

용계서원(龍溪書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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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정보 테이블
유물명 용계서원(龍溪書院) 유물형태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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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시 와룡면 산야동에 있는 서원의 현판이다. 용계서원은 1778년(정조 2)에 창건되어 유일재 김언기(金彦璣, 1520~1588)와 그의 조부인 담암(潭庵) 김용석(金用石), 그리고 권대기(權大器) 등을 배향(配享)하였다. 19세기 후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어 현재는 강당과 주사(廚舍)만 남아 있으며, 향사(享祀)는 3월 상정일(上丁日)에 있다.
김언기의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중온(仲瑥), 호는 유일재(惟一齋)이다. 안동 와룡(臥龍) 가야동(佳野洞)에서 후진양성과 학구생활로 일생을 지낸 학자이다. 선생의 선대는 본래 서울에서 벼슬을 하는 가운데, 홍귀달(洪貴達)·김종직(金宗直)·남효온(南孝溫) 등 이름 있는 문인들과 교유가 깊은 문한가였다. 선생의 가문이 안동에 자리 잡은 것은 조부인 담암(潭庵) 김용석(金用石) 때부터이다. 김용석은 연산군의 난정을 보고 안동 구담(九潭)에 내려와 터를 잡았는데, 후손들에게 벼슬에 나아가지 말 것을 훈계하여 그로부터 자손들이 안동에서 터를 세거하게 되었다고 한다. 1561년에 가야에 서당을 짓고 수십 명의 문도들을 양성하였는데 사방에서 모인 생도들이 많아 이루다 수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강학을 통한 후진양성은 그가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지속되었는데, 이 같은 그의 공에 대하여 이광정(李光庭)은 ‘복주의 문학 흥성은 선생의 창도에 힘입은 바 크다’라 평가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