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판
흥주고부은행수기(興州故府銀行樹記)
유물명 | 흥주고부은행수기(興州故府銀行樹記) | 유물형태 | 서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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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탁자 | 크기 |
금성단(錦城壇)에 걸려 있는 조덕상(趙德常)이 지은 흥주고부은행수기(興州故府銀杏樹記)이다. 단종복위운동이 실패하고 순흥이 폐부가 되자 은행나무도 말라죽고, 순흥이 승격되기 얼마 전에 갑자기 은행나무가 살아났다고 한다.
금성단은 조선 세조 때 단종(端宗)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화를 당한 금성대군(錦城大君 : 세종의 6남. 단종의 숙부이자 세조의 아우)과 순흥부사 이보흠(李甫欽) 및 그와 연루되어 순절한 의사(義士)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설립된 제단이다. 순흥이 다시 부로 회복된 후 1693년(숙종 19) 순흥부사 정중창(鄭重昌)이 마을사람들과 더불어 금성대군을 위치안치하였던 유지에 제단을 설치하여 금성대군과 순흥부사 이보흠과 그 당시 함께 순절한 사람들을 제사하였다. 하지만 재를 올리는 것은 향규가 되지 못하고 단절되어 단은 폐허가 되다시피 하였다. 1719년(숙종 45) 금성대군이 안치되었던 자리가 폐허가 된 것을 안타깝게 여긴 이기륭(李基隆)이 부사 이명희(李命熙)에게 제단의 설치를 건의하여 이명희가 그 유허지에 단을 설치하였다. 그 후 1742년(영조 18)에는 경상감사 심성희(沈聖希)의 청원에 의하여 단소를 정비하고 상단에 금성대군, 좌단에 이보흠, 우단에 순절의사의 위를 모시고 순의비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