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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현판

만죽재(晩竹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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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슬라이드쇼
유물정보 테이블
유물명 만죽재(晩竹齋) 유물형태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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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죽재(晩竹齋)에 걸려 있는 석운(石雲) 박기양(朴箕陽, 1856~1932)이 쓴 편액이다. 만죽재는 박수(1641~1709)가 1666년에 세운 집이다. 박수의 자는 문중(文仲)이고, 충의위(忠義衛)를 지냈다. 환학암 박경안의 아들이다.
만죽재 현판 글씨를 쓴 박기양은 호가 석운(石雲)으로, 1888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부사정(副司正)·시강원설서(侍講院設書)·검열·문학·대사성·승지·이조 참의·형조 참판을 거쳐 경기도 함경도의 관찰사를 지내고 궁내부특진관·중추원의관·시강원첨사·태의원경 등을 역임하고, 의정부 찬정이 되었다. 1899년 궁내부대신서리, 1910년 규장각제학을 지내다가 한일합방으로 일본정부에 경학원부제학, 1925년에 중추원참의가 되었다. 금(琴)·기(棋)·서(書)·화(畵)에 모두 능했다. 글은 행서(行書), 그림은 묵죽(墨竹)에 뛰어났고, 여러 번 조선미술전람회 평의원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