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판
사시음(四時吟)
유물명 | 사시음(四時吟) | 유물형태 | 서판 |
---|---|---|---|
기탁자 | 크기 |
원제목은 ‘산거사시각사음(山居四時各四吟)’이다.
퇴계 이황이 산속에 은거하면서 바라본 풍경과 느낀 감회를 노래한 시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별 풍경과 감회를, 아침, 낮, 저물녘, 밤의 하루 네 번에 걸쳐 노래하였다. 그래서 이 시는 모두 16수가 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봄
아침
봄 산에 노을이 걷히자 금수강산이 밝아오네
진귀한 새가 서로 화합하며 백가지 소리로 울어대네
산 속에 거처하니 요즘엔 오는 손님도 없으니
푸른 풀만 뜰 안에 마음대로 피는구나
낮
새로 개인 이 정원에 봄빛이 더디어
꽃 향내 나는 듯이 내 옷에 풍겨오네
어째서 성인께서는 네 제자가 각자 뜻을 말할 적에
시나 읊고 돌아오겠다는 증점(曾點)을 찬탄했나
저물녘
동자가 산에 올라 고사리를 캐었으니
반찬이 넉넉하여 요기 거리 되겠구나
그날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 사람 저녁 이슬에 옷이 젖었지만
마음에 변함없던 그 뜻을 알겠구나
밤
꽃빛이 어둠을 맞자 달이 동쪽에서 떠오르네
맑음 밤 꽃과 달에 이 뜻이 그지 없네
그러나 달은 둥글고 꽃은 시들지 않으니
꽃 밑 술잔 빈 것 걱정하지 말게나.
여름
아침
새벽에 일어나니 텅빈 뜰에 대 이슬이 맑구나
뭇산 푸른 빛을 헌함 열고 대하노라
동자가 서둘러 물을 길어 병에 담아 오니
탕임금의 반명(盤銘)처럼 깨끗이 씻으리
낮
한낮 고요한 산집에 햇빛도 밝구나
총롱한 나무들이 처마 끝에 둘렸구나
북창에 높이 누우니 희황씨(羲黃氏) 이전인 듯
바람결이 서늘하여 새 한 소리 보내오네
저물녘
석양의 아름다운 빛 계곡과 산을 움직이네
바람 자고 구름 자고 새는 절로 돌아가네
홀로 앉아 깊은 회포 누구와 얘기할까
바위 언덕 고요하고 물은 잔잔히 흘러가네
밤
정원은 고요하고 산은 텅비니 달빛 절로 밝구나
이부자리 깨끗하니 꿈도 역시 맑도다
길이 숨길 잠꼬대하니 알괘라 무슨 일인지
깊은 밤 누워서 날짐승 울음 소리 듣노라
가을
아침
어제 저녁 바람 일어 남은 더위 사라지고
아침 서늘한 기운 흉금에 뿜는 듯이
영균(靈均: 굴원)이 아마도 도를 알지 못했겠지만
어찌하여 천년 뒤에 회옹(晦翁)을 감동시켰을까
낮
서리 내리고 하늘엔 새매가 날아가고
물 언덕 바위틈에 한 서당이 높았어라
요즘 벗 찾아오는 길이 더욱 쓸쓸하여
국화를 손에 쥐고 앉아 도연명을 추억하네
저물녘
가을의 빛을 바라보며 누구와 함께 기뻐하리
단풍에 석양 비치니 그림보다 아름다워라
별안간 서녘 바람 기러기를 불러오니
혹시나 고인 편지 부쳐오지 않을는지
밤
차가운 못에 달빛이 비치고 옥우(玉宇)는 청아하네
그윽한 이 외로운 방이 텅 비고 밝구나
이 중에 저절로 참 소식 있겠으니
참선도 아니려니와 어두운 도와는 다르리라
겨울
아침
뭇산봉우리 우뚝하게 서리 내리는 허공에 솟아있고
뜨락 및 국화꽃은 떨기 아직 남았어라
땅을 쓸고 향 태우니 다른 일이 전혀 없고
종이창에 해 비치어 마음처럼 밝구나
낮
경영하는 일이 있어 차가운 철 깊이 사니
꽃과 대도 보호하고 여읜 이 몸 수양하리
찾아온 손님에게 은근히 사절하되
삼동에 들어서는 맞고 보냄도 끊으리라
저물녘
뭇나무 잎이 지고 해는 짧아졌네
쓸쓸히 내낀 숲에 새는 깊이 깃들어라
어떤 뜻을 지녔길래 예로부터 저녁 공경했던가
게으름과 욕심일랑 은미한 곳에 막으리라
밤
눈에 피는 어둠 꽃이 등불 대기 어려우니
기나긴 겨울밤을 병든 이가 잘 알리라
글을 읽지 않더라도 읽는 것보다 나을지니
서리보다 차가운 달 앉아서 보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