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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현판

만은(晩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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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슬라이드쇼
유물정보 테이블
유물명 만은(晩隱) 유물형태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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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이씨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 1711∼1781)의 종가에 보관되어 있던 현판이다.
이상정은 이황의 학맥을 잇는 영남 사림의 중추적인 선비인 이현일(李玄逸)의 외현손이자 이재(李栽)의 외손자이다. 그래서 이상정은 당시 기호학파에 비해 상대적으로 침체되어 있던 영남학파를 재건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이상정은 1735년(영조 11)사마시와 대과에 급제하여 가주서가 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대산서당을 짓고 제자 교육과 학문 연구에 전념하였다. 그의 학설은 퇴계의 주리설을 한층 발전시키는 동시에 덕성을 배양하는 일상의 공부를 중시하는 데로 모여진다. 이후 그의 학맥은 광정(光靖)과 남한조(南漢朝)를 통하여 유치명(柳致明)으로 이어지고, 다시 이진상(李震相)에 이르러 유리론(唯理論)으로 전개되었으며, 한말에 이르러서는 곽종석(郭鍾錫)으로 계승되었다.
이 현판은, 고향에 은거하며 세속의 명리를 초월하는 그의 만년의 풍모를 그대로 보여준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