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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고문서

교첩(이현보-세자시강원사서-1)(敎牒(李賢甫-世子侍講院司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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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정보 테이블
유물명 교첩(이현보-세자시강원사서-1)(敎牒(李賢甫-世子侍講院司書-1)) 유물형태 고문서
기탁자 크기 42.0X69.5

홍치 17년인 1504년(연산군 10) 1월 17일에 선무랑 성균관전적으로 있던 이현보(李賢甫, 1467~1555)를 선무랑 세자시강원사서로 임명한 이조교첩이다.
교첩은 주로 5품 이하의 문무관리를 임명할 때 사용되었다. 5품 이하는 낭계(郞階)라 하며, 대간(臺諫)의 서경을 거친 뒤 왕명을 받아 이조 또는 병조에서 발령하였다. 연호 위에는 이조지인(吏曹之印) 또는 병조지인이 찍혔다.
이현보는 문신이자 시조 작가로, 본관은 영천(永川)이다. 자는 비중(棐仲), 호는 농암(聾巖)이며, 참찬 이흠(李欽)의 아들이다. 1542년 76세 때 지중추부사에 제수되었으나 병을 핑계로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와 만년을 강호에 묻혀 시를 지으며 한가히 지냈다. 홍귀달(洪貴達)의 문인이며, 이황(李滉), 황준량(黃俊良) 등과 친하였다. 그는 조선시대에 자연을 노래한 대표적인 문인으로 국문학사상 강호 시조의 작가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