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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고도서

나은문집(懶隱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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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정보 테이블
유물명 나은문집(懶隱文集) 유물형태 고도서
기탁자 크기 31.5×19.5

『나은문집(懶隱文集)』은 조선 후기의 학자인 이동표(李東標, 1644-1700)의 문집이다. 이동표의 본관은 진보(眞寶), 자는 군칙(君則)과 자강(子剛), 호는 나은(懶隱)이다. 아버지는 운익(雲翼)이며, 어머니는 김후기(金厚基)의 딸이다. 1675년(숙종 1) 진사가 되고, 1677년 증광회시에 장원하였으나 파방(罷榜)되었다가 1683년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687년 창락도 찰방(昌樂道 察訪)에 임명되었으며, 1689년 왕명으로 한림을 뽑을 때 영의정 권대운(權大運)의 천거로 수천(首薦)이 되었다. 성균관전적을 거쳐 홍문관부수찬에 제수되었으나 기사환국 때 인현왕후(仁顯王后)의 폐위를 반대하여 죄를 입은 박태보(朴泰輔), 오두인(吳斗寅) 등을 신구하다가 양양현감으로 좌천당하였다. 그 뒤 사간원헌납, 이조좌랑, 홍문관교리 등에 임명되었으나 그 때마다 사직하고 귀향하였으므로 사람들은 소퇴계(小退溪)라 일컬었다. 낙향한 뒤에도 계속하여 사헌부집의, 호조참의, 삼척도호부사 등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으며, 사직의 상소와 함께 그 때마다 직언으로 시정의 개선책을 건의하였다. 1741년(영조 17)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1845년(현종 11) 예천의 원산서원(元山書院)에 봉안되었다.
이 책은 일찍이 이광정(李光庭)과 권만(權萬)이 교감(校勘)하여 발행하려 하였으나, 1813년(순조 13)화재로 인하여 대부분 소실되어 발간이 중단되었다. 그 뒤 1880년(고종 17)에 현손인 한용(漢庸)과 5대손 형(衡)등이 유고를 모아 간행하였다. 현재 사진에 보이는 이 문집은 간행하기 전 교정을 본 필사본으로 곳곳에 교정의 흔적이 보인다. 문집 가운데 소의 내용은 시정(時政)을 직간한 것이 많으며, 특히 1689년(숙종 15)의 기사환국 때 인현왕후(仁顯王后)의 폐출을 반대한 것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