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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서판

근서수고헌제판후(謹書壽考軒題板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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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정보 테이블
유물명 근서수고헌제판후(謹書壽考軒題板後) 유물형태 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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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서수고헌제판후(謹書壽考軒題板後)는 미수(眉叟) 허목(許穆, 1595~1682)이 정언숙(丁彦璹, 1600~1693)의 당호인 ‘수고헌(壽考軒)’을 전서로 써 준 것을 그의 11대손인 정태진(丁泰鎭, 1876~1960)이 판각한 후 그 경위를 서술한 글이다. ‘수고(壽考)’라는 말은 『서경(書經)』 「홍범(洪範)」에 나오는 오복(五福)에서 연유한다.
정언숙은 자가 군서(君瑞), 호는 검암(儉巖), 수고헌(壽考軒)이다.
정태진은 자가 노수(魯叟), 호는 외재(畏齋)이다. 이병호(李炳鎬)에게 글을 배우고, 자라서는 면우(俛宇) 곽종석(郭鐘錫)에게 사사하여 성리학에 일가를 이루었다. 1910년 나라를 잃자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하였으며, 1919년 파리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보낼 때 대표로 참석하였다가 대구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출옥하여서 검암정사를 중수하고 학문에 잠심하자, 원근의 많은 학도가 모여 들어 후진 양성에 이바지 하였다. 저서로 󰡔외재집(畏齋集)󰡕이 있다. 연민(淵民) 이가원(李家源)이 그의 문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