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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서판

몽화각기(夢花閣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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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슬라이드쇼
유물정보 테이블
유물명 몽화각기(夢花閣記) 유물형태 서판
기탁자 크기

몽화각(夢花閣)에 걸려 있는 이세택(李世澤)이 지은 몽화각기(夢花閣記)이다. 몽화각이 지어진 유래와 후손들이 학업에 힘쓸 것 등의 내용을 담았다. 남편의 사후, 신안주씨의 꿈에 타계한 남편의 혼령이 나타나 ‘영천(영주를 뜻함. 당시 이곳이 영주에 속해 있었음을 의미함. 지금은 봉화에 속함) 북쪽에 삼송당(三松堂) 상사(上舍) 남몽오(南夢驁)가 사는데 학문과 덕행이 뛰어나 아들을 가르칠만하다. 그가 사는 곳의 단화(丹花)가 피어있는 곳 아래에 집을 지으면 자손이 번창하리라.’라는 말을 하였는데 다음 날에도 반복되었다. 주부인은 현몽의 가르침을 따라 8세 아이를 이끌고 화천에 들어왔고 남공에게 아이의 교육을 맡기고, 단화가 핀 자리 아래에 집을 짓고 살았다고 한다.
몽화각은 무안박씨 영해파에 속하는 박전(朴全, 1514~1546)의 배위인 신안주씨가 자제 교육에 대한 열성을 갖추고 있어서 결국 가문을 번성시켰음을 기리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박전의 아들은 박선장(朴善長, 1555~1616)이다. 박전은 자가 면부(勉夫), 호가 송파(松坡)로 1546년 문과 급제를 통해 벼슬길에 나아가 호조정랑에 까지 이르렀다. 박선장은 자가 여인(汝仁), 호가 수서(水西)로 1605년에 문과 급제하여 벼슬이 도사(都事)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