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
고운선생필첩(孤雲先生筆帖)
유물명 | 고운선생필첩(孤雲先生筆帖) | 유물형태 | 회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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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탁자 | 울진장씨 고산성파 | 크기 | 26.0×18.8 |
최치원(崔致遠, 857~?)의 유묵(遺墨) 탁본을 모아 엮은 필첩이다. 최치원은 경주 최씨의 시조로 자는 고운(孤雲) 혹은 해운(海雲)이다. 868년(경문왕 8) 12세의 어린 나이에 당나라로 유학을 가서 874년 과거에 급제한 뒤 당나라에서 여러 벼슬자리를 역임하였다. 황소(黃巢)의 난 때 고변(高騈)의 종사관(從事官)으로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을 지어 문장가로서 명성을 떨쳤다. 그 후 신라로 돌아와 문란한 국정을 보고 통탄하여 외직을 자청, 대산(大山) 등지에서 태수(太守)를 지냈다. 이후 난세를 비관하여 각지를 유랑하다가 해인사(海印寺)에서 여생을 마쳤다. 글씨를 잘 썼으며 「난랑비서문(鸞郞碑序文)」은 신라시대의 화랑도(花郞道)에 대해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고려 현종 이후 문묘(文廟)에 배향되어 문창후(文昌侯)에 추봉되었다. 이 서첩의 글씨는 「대숭복사비(大崇福寺碑)」, 「진감국사비(眞鑑國師碑)」, 「지증대사적조탑비(智證大師寂照塔碑)」, 「무염국사백월보광탑비(無染國師白月葆光塔碑)」, 「사산비(四山碑)」 등이다. 이 서첩은 1927년경 대량 제작되어 널리 유포되었던 것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