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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명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유물형태 고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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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초에 오례(吉禮, 賓禮, 嘉禮, 軍禮, 凶禮)를 중심으로 한 관·민의 모든 의식 절차를 제정한 책이다.
고려 중기에 주자학이 수용된 이래 중국의 예식을 본받는 바가 늘어났고, 더구나 여말에는 불교의 배척과 유학의 발흥, 유학자의 초출로 인하여 유교형식으로 더욱 쏠렸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숭유억불(崇儒排佛) 정책으로 국가의 모든 예와 의식 행사에 순 유교식을 적용하게 되었다. 세종이 법전이나 예식의 성문화에 착수하여 《경제육전속전》이 이루어지고 《국조오례의》가 상정되어 이것이 후의 《경국대전》 중 「예전(禮典)」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즉, 세종이 개국 이래의 제례(制禮) 작업에 뜻을 두어 당시 예조판서이던 許稠 등에게 고금의 예서와 중국의 《홍무예제(洪武禮制)》 등을 참작케 하고 두씨의 《통전(通典)》을 모방하여 『오례』의 편찬에 착수케 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완성되지 못하고 세조 때 강희맹(姜希孟)의 손을 거쳐 1474년(성종 5)에 신숙주 등이 완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