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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고도서

기양세고(岐陽世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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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정보 테이블
유물명 기양세고(岐陽世稿) 유물형태 고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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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전주유씨 근암고택에 소장되어 있던 『기양세고(岐陽世稿)』로 총 2책이다. 이 책은 유의손(柳義孫, 1398~1450)의 『회헌일고(檜軒逸稿)』와 유복기(柳復起, 1555~1617)의 『기봉고(岐峯稿)』를 합편한 책이다. 첫머리에 서문이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정종로(鄭宗魯)가 쓴 『회헌일고(檜軒逸稿)』의 서문이고, 또 하나는 황룡한(黃龍漢)이 쓴 『기양세고(岐陽世稿)』의 서문이다.
유의손은 본관이 전주(全州), 자는 효숙(孝叔), 호는 회헌(檜軒) 또는 농암(聾巖)이다. 1419년(세종 1) 생원시에 합격하고, 1426년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그 뒤 검열을 거쳐, 감찰·수찬을 역임하였다. 1436년에 문과중시에 을과로 급제하고 곧 직제학에 올랐다. 문장에 능하였다고 한다.
유복기는 본관이 전주(全州), 자는 성서(聖瑞), 호는 기봉(岐峯)이다. 외숙 김성일(金誠一)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정구(鄭逑)와 더불어 교유하였다. 임진왜란 때 김해(金垓)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예천 등지에서 싸웠으며, 정유재란 때에는 곽재우(郭再祐)를 따라서 화왕산성(火王山城)을 지켰다. 전란이 끝난 뒤에는 굶주려 방랑하는 백성들을 진휼하는 데 힘썼다. 벼슬이 예빈시정(禮賓寺正)에 이르렀으며, 안동의 기양리사(岐陽里社)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