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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회화

서화3(신한)(書畵3(宸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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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정보 테이블
유물명 서화3(신한)(書畵3(宸翰)) 유물형태 회화
기탁자 크기 37.5×24.3

개성고씨 월봉종택에서 보관하고 있는 영조(1694∼1776)의 어필(御筆)과 영조가 신하에게 보낸 서찰을 모은 것이다. '신한(宸翰)'은 임금의 친필 편지를 일컫는 말이다. 이 『신한』에는 영조(1694∼1776)의 친필 서한과 이에 대한 답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조는 사마광(司馬光)이 유비(劉備)를 정통의 성군(聖君)으로 평가하지 않은 것에 반발하면서 다음과 같은 시를 신하들에게 써서 보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해와 달 같음은 / 亘古于今日月同
대의를 펴려 했던 제갈량의 충성일세 / 欲伸大義漢相忠
오척의 아이들도 사마광을 칭송하나 / 五尺兒童誦君實
사마광은 어찌하여 공의를 몰랐던가 / 司馬何以不知公

영조는 유비의 덕치야말로 유교 성인의 다스림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사마광의 역사 평가를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이 시에 대해 4명의 신하, 즉 우승지(右承旨) 남경태(南泰慶)ㆍ가주서(假注書) 고유(高裕: 1722~1779)ㆍ검열(檢閱) 남태회(南泰會)ㆍ검열(檢閱) 이기덕(李基德)이 영조에게 올린 화답시가 『신한』에 함께 수록되어 있다. 『영조실록』 20년 12월 경오일(庚午日) 조에 이 『신한』에 대해 기사가 자세히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