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 때의 호불정책과 불서 간행사업의 촉진은 사찰에 큰 영향을 주어 많은 불교서적을 목활자로 찍어내게 했다. 이 때의 목활자는 제작한 사찰과 시기, 그리고 인출 경위 등에 관해서는 전해오는 바가 없어 자세히 알 수 없으나 글자체가 을유자와 닮아 '을유자체 목활자'로 불리고 있으며, 제작 연대는 15세기 후반 무렵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목활자는 하나 하나 손으로 새겼기 때문에 금속활자인 을유자에 비하면 글자의 크기와 모양이 일정하지 않고 글자 획도 가지런하지 않지만, 활자를 만들어 바로 찍어낸 책들을 보면 먹색의 진함과 인쇄의 선명도는 금속활자인 을유자보다 오히려 나은 편이다.
한편, 성종이 승하하자 대비들이 명복을 빌기 위해 연산군 원년(1495) 원각사에서 대대적으로 불경을 찍고 동일한 내용의 단일 발문을 작성한 다음 목활자를 만들어 찍어 모든 책 끝에 똑같이 붙였다. 이듬해에는 임금이 개인 경비로 불경의 간행사업을 직접 도와줌으로써 성종의 계비인 정현대비(貞顯大妃)와 덕종의 비인 인수대비(仁粹大妃)가 주관하여 정성껏 목활자를 더 만들고 불경을 잇따라 찍어냈는데, 이때 만든 한자 목활자를 '인경자'라 하고, 한글 목활자를 '인경 한글자'라고 한다.